0004644824_001_20211225194401025 (1)
고(故) 양병집.사진|유튜브 Ever Musica Studio

[스포츠서울|조현정기자]1970년대를 전성기를 누린 ‘1세대 포크 가수’ 양병집(본명 양준집)이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70세.

25일 가요계에 따르면 양병집은 친분이 있던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와 생전 자주 찾던 마포구의 한 단골 카페에서 약속했다가 나타나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카페 주인이 112에 신고해 경찰이 자택에서 발견했다.

고인은 학창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유명 음악감상실을 드나들었다. 이어 음악의 꿈을 좇아 서라벌예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부친의 반대로 음악학도의 길을 접고 증권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도 음악을 향한 그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아 입사 1년여 만인 1972년 한 포크 콘테스트에 동생 양경집의 이름으로 참가해 3위로 입상했다. 당시 부른 노래는 밥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잇’(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스스로 노랫말을 붙인 그의 대표곡 ‘역’(逆)이었다.

주최 측은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을 ‘양병집’으로 잘못 불렀는데, 이를 계기로 고인이 양병집으로 예명을 정했다고 한다.

고인은 1974년 1집 ‘넋두리’로 가요계에 본격 데뷔해 현실을 비꼬는 노랫말과 구수한 가락으로 당시 젊은 지성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때문에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1970년대 3대 저항가수로 불렸다.

미국 민요 ‘윕 포 제이미’(Weep For Jamie)를 개사한 ‘잃어버린 전설’에는 월남 파병, 민주화 항쟁, 산업 전선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를 애도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또 고인은 ‘서울 하늘 1’에서는 ‘나도 출세 좀 하고 싶어서 일자리를 찾아봤으나 내 맘대로 되지 않습디다…두 번 다시 안올랍니다’란 가사로 당대 사회 이슈였던 ‘이농향도’(離農向都)를 정면으로 꼬집었다.

이 때문에 이 음반이 발매 1년 4개월 만에 금지곡과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는 등 고인은 독재 정권 아래에서 고초를 겪었다.

양병집은 가수 활동에 대한 제약으로 1980년대 초 서울 이화여대 인근에 음악 카페 ‘모노’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곳은 밴드 들국화가 결성을 도모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양병집은 이후 호주로 이민갔다가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2005년에는 7집 ‘페이드 어웨이’(Fade Away), 2013년에는 8집 ‘에고&로고스’(Ego&Logos)를 발표했다.

2016년에는 들국화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조덕환과의 협업곡을 담은 새 앨범 ‘흔치 않은 노래들’을 내는 등 꾸준히 음악 활동을 펼쳐왔다.

고인은 불과 약 1개월 전 풍자적인 노랫말로 사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자신의 음악 여정을 풀어낸 자전적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양병집은 신랄한 ‘언어의 풍자가’로, 미국 포크곡에 우리나라 현실을 접목해 한국적 포크를 개척했다”며 “여기에 토속적 요소를 도입하고자 수고를 기울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hjch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