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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가운데) 교수가 런웨이를 소화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글·사진 | 이주상기자]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삶이 의무가 아니라 충만함으로 채워졌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모나코 스페이스에서 명지대학교 미래교육원이 주최한 ‘시니어센터 2022 SS 패션쇼’가 열렸다. 이번 패션쇼를 기획한 김미란 교수는 1991년부터 명지대학교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업은 첼리스트로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유명 음악대학인 ‘AIDM(Accademia Internazionale di Musica) ROMA’에서 디플로마를 수료했다. 현재는 명지대학교 미래교육원 시니어센터 센터장을 겸직하며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시니어모델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김 교수는 이날 메인모델로 런웨이를 소화했다. 김 교수는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기분이었다. 성취감과 벅찬 감정도 있었지만 또렷하게 남는 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점이다. 놀라운 경험이었다”라며 “타인 앞에서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는 것을 패션쇼가 끝나고 바로 알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삶이 의무가 아니라 충만함으로 채워졌다”라며 벅찬 기쁨을 전했다.

6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대 동안을 자랑하는 김 교수는 “모델수업에 참여하면서 근육량의 유지와 호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꾸준히 근육운동을 할 예정이다. 모델수업을 하면서 얻은 귀중한 인생의 팁이다”라며 시니어모델이 새로운 인생 설계의 원동력을 제공했음을 알려줬다.

이번 패션쇼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기획됐다. 쥬얼리를 통한 화려함, 포용성, 평화 등을 주제로 삼았다. 특히 평화를 통해 인간의 행복과 여유로움을 전했다. 김 교수는 “평화가 머무는 여행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다. 그런 환상적인 세상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함께 즐기는 것이 이번 패션쇼의 콘셉트”라며 의미를 설명했다.

시니어센터장으로서 많은 시니어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요즘이다. 김 교수는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시니어들이 숨어 있던 자기 재능을 계발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함으로써 잠자던 심미적 감성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감성 노화를 지연하여 개방적 태도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이 절실하다. 센터장을 떠나 현역에서 활동하는 시니어모델로서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고 싶다”라며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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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오른쪽에서 두번째) 교수가 런웨이를 소화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다음을 김미란 교수와의 일문일답.

- 이번 패션쇼를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기분이랄까요. 성취감과 벅찬 감정도 있었지만 또렷하게 남는 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점이에요. 한여름 밤의 꿈같다는 건 단지 몽환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만은 아니에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세계에 나란 존재가 머물렀고 거기에 어울리는 장식품 같은 역할이 아닌 나의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드러냄으로써 세계를 생성해 나갔다는 거지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워킹이라는 개념을 몰랐는데 패션모델 출신인 박세련 지도교수님의 지도로 다시 태어났죠. 타인 앞에서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는 것을 패션쇼가 끝나고 바로 알게 되었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무대에 섰던 동료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고 넘치도록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유병진 총장님을 비롯해 문선웅 미래교육원 원장, 주성일 사무지원처장, 구제홍 교목실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무사히 패션쇼를 마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 이번 패션쇼가 세 개의 콘셉트로 구성됐는데요.

이번 패션쇼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기획되었어요. 첫 번째는 쥬얼리 를 통해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이미지를 극대화하려고 노력했지요. 숨이 멎을 정도로 강렬한 색채가 교차되는 가운데 정갈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선보이고자 했어요.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은 묵직한 어둠 속에서 만들어지기에 강렬함과 우아함이 함께 교차하는 무대를 기획했어요.

첫 에피소드부터 고요함을 껴안은 강렬한 순간을 표현하면서 밝고 생명감이 넘치는 두 번째 무대를 선보였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이 교차한다는 점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서로 선 긋기를 하기보다 발랄하고 생생한 기운을 나누는 가운데 함께 포용하면 밝은 세상에 가까워진다는 메시지를 담기도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에피소드 제목 자체가 Diversity(포용성) & Together 이에요. 이어서 세 번째 무대는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Sea Breeze(바닷바람)라는 제목만 들어도 우리는 어딘가 평화가 머무는 여행지에 앉아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어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지요. 그런 환상적인 세상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함께 즐기는 것이 이번 패션쇼의 콘셉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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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교수가 패션쇼의 첫 번째 주제인 쥬얼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패션쇼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패션쇼에서 저는 모델이지요. 모델로서 무대의 콘셉트를 이해하고 무대와 하나가 되어 제 자신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명지대학교 시니어센터 센터장으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여러 역할을 하고 있지만 패션쇼에서 저는 새로운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충실한 학습자입니다. 무대에서 저는 오롯이 모델이었습니다.

- 명지대 미래교육원에서 시니어 센터장을 맡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명지대 미래교육원은 대학에서 최초로 설립한 전문학습기관으로 성인교육 및 실무능력 위주의 전문사회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는 평생교육의 명문 사학입니다. 오랜 세월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일했다 하더라도 기존의 지식과 기술로 적응할 수 없는 파격적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재교육 즉 평생학습이 필요하지요. 교육기관이라면 충분한 경험과 커리어를 보유한 양질의 인력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적 지원을 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라 생각합니다.

특히 높은 이직률과 조기 퇴직이 일상화된 고용 불안의 현실에서 재취업 과정은 녹록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식반감기로 접어든 시대에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것만큼 중요한 힘이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 태도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노년으로 갈수록 경직된 사고와 폐쇄적 태도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대 간 의사소통 능력 및 자기관리 역량이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시니어들이 숨어 있던 자기 재능을 계발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함으로써 잠자던 심미적 감성을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감성 노화를 지연하여 개방적 태도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이 절실하지요. 시니어들이 세대 간 차이를 이해하고 개방적 태도로 젊은 세대와 연대하고 선배 시민으로서 인생 제2막을 자기 주도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학습경험을 제공하는 곳이 시니어센터입니다. 현재 모델, 뮤지컬, 배우, 트로트(가요), 밴드, 오페라 과정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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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교수가 패션쇼의 두 번째 주제인 포용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100세 시대를 맞아 시니어 모델의 역할이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성장 주도의 경쟁 사회에서 쉼 없이 달려온 시니어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자기 삶 찾기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만나는 장이 필요합니다. 100세 시대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더 오랜 시간 일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한 발달과제라 하겠습니다. 의료와 과학의 발달로 우리는 이제 안티에이징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신체적 노화에 대비한 다양한 방안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 마음입니다. 신체와 정신은 함께 기능합니다. 따로 떼어 볼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시니어모델은 자세 교정을 통한 건강한 신체를 회복하고 유지함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하자는 필요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습자들 모두에게 일어난 공통된 변화라면 바로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는 점입니다.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있게 수업을 하면서 매사 긍정적 태도로 소통하게 됩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포기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다시 추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건 외적인 치장으로 자기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에너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행위라는 의미입니다.

시니어모델은 인간이 노화하는 가운데 자기 몸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균형미와 조화미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니어모델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고, 이후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생을 첼로연주가이자 교육자로 살아왔습니다. 첼로의 음색 가운데 평안과 열정을 찾으려 했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그 안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재직 중인 명지대학에서 시니어센터 센터장을 맡게 되면서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바로 시니어모델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지요.

악기 연주가 정적인 활동이라면 모델 과정은 좀 달랐습니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특히 소리에 민감한 제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움직일 때면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유로와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지 못했던 저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면서 삶이 의무가 아니라 충만함으로 채워진다는 걸 몸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달라진 점이고 시니어 모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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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교수가 패션쇼의 세 번째 주제인 평화를 표현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교수님 만의 색깔이 있다면, 어떤 것이지 궁금합니다.

첼로 공연을 해서 그런지 무대에 서면 자연스레 몰입하게 됩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많이 긴장되고 떨리지만 막상 무대에 서면 어깨도 쫙 펴지고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당함이 매력이랄까요! 사람이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늘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우리의 일상이 사소하다고 치부할 순 없지만 일상에 매몰되다 보면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생각하면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모델에 도전하게 되고 새로운 세계와의 연결은 제 삶을 확장시켜 줍니다. 그래서 여전히 호기심이 많습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제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 20, 30대 못지 않은 아름다운 라인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모든 커리어우먼이 그렇지만 저도 아이 키우고 학교일을 하다 보니 운동하거나 몸을 관리할 시간이 따로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다이어트라든지 질병으로 인해 특별히 운동해야 할 필요를 아직까지는 느끼지 못하기도 했지요. 참 감사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모델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 유지와 호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꾸준히 근육운동을 할 예정입니다. 이것도 모델수업을 하면서 얻은 귀중한 인생 팁입니다.

- 시니어모델, 시니어센터장으로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삶의 전환기에 놓여 있는 많은 분에게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바람이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시니어센터에서 트로트, 뮤지컬, 배우, 모델 각 부문을 총괄하게 되었어요. 오케스트라로 비유하면 연주 단원에서 지휘자로 역할이 바뀌었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오랜 세월 교육 경험을 잘 활용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롭게 잘 운영될 수 있는 시니어센터로 키워내고 싶습니다. 각 과정을 수료하는 시니어 학습자와의 끈끈한 관계를 통해 서로 함께 어우러지는 삶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요즘 힘이 납니다. 한 발짝 뒤에 물러선 리더가 아니라 패션쇼와 같은 현장 참여를 통해 모델에 도전하면서 제 개인의 삶 역시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올 해도 에너지 넘치는 삶의 한 가운데서 저 역시 인생 2막을 시작하며 열심히 뛰어보려고 합니다.

rainbow@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