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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프리에이전트(FA) 계약에 정가는 없다. 부동산처럼 흐름에 맞춰 가격대가 형성된다. 때로는 경매하듯 경쟁이 붙어 하염없이 가격이 치솟는다. 기량과 운이 절묘하게 맞물리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두둑한 금액을 거머쥔다. 지난해까지 외야수였고 올해는 1루수인, 오는 겨울 FA 시장 최대어로 떠오르고 있는 LG 채은성(32) 얘기다.
1년 전 모험이 성공을 향한다. 채은성은 지난해 여름 김민호 코치의 권유에 따라 7년 만에 1루수 미트를 잡고 훈련했다. 당시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이제는 외야수 글러브가 아닌 1루수 미트만 챙긴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시즌 동안 우익수로서 4500이닝 이상을 소화했는데 올해는 고작 33이닝이다. 우익수 대신 1루수로 이미 501이닝을 기록했다.
1루수 경험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1군 무대에 오른 2014년에도 1루수로 110이닝을 소화했다. 2009년 프로 입단 후 3루수와 포수도 봤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훈련했다. 이번에는 아니다. 이미 외야수로서 수준급 타격을 증명했다. 게다가 FA도 앞두고 있다. 1루 겸업에 실패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채은성은 “당연히 고민을 많이 했다. 주위에서 걱정하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팀을 생각하면 내가 1루수를 보는 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루와 외야를 다하면 라인업을 짜기도 편하고 외국인선수를 뽑을 때 선택지도 많아진다”면서 “1루수와 FA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나만 생각했다면 그냥 외야수를 계속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7년 만에 1루 미트를 잡았던 순간을 돌아봤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본인도 놀랄만큼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 1루수로 첫 시즌, 반환점을 지나는 시점에서 동작 하나하나가 자연스럽다. 옆으로 빠질 수 있는 강한 타구를 다이빙 캐치한다. 투수의 견제구 혹은 동료 야수의 송구를 놓치는 모습은 극히 드물다. 시간이 흐르고 경기를 치를수록, 1루·외야 겸업이 아닌 1루가 주포지션이 되고 있다.
채은성은 “캠프까지는 이렇게 1루수로 많이 나갈 줄 몰랐다. 우익수나 지명타자로 나가고 가끔 1루를 볼 줄 알았는데 이제는 거의 1루 미트만 챙긴다. 믿어주신 감독님과 도와주신 코치님, 그리고 동료들 덕분”이라며 주위에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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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루에 적응하면서 방망이에는 불이 붙었다. 지난달 19일 고척 키움전에서 극적인 동점 솔로포를 터뜨렸고 이날부터 지난 10일 잠실 두산전까지 15경기 65타석 동안 타율 0.431 6홈런 22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272로 펄펄 날고 있다. 예전과 달리 이천에 가지 않아도 굵직한 상승곡선을 만든다. 그러면서 박병호 다음으로 뛰어난 1루수가 됐다. 1루수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 스탯티즈 참조) 2.56으로 2위다. WAR 2.96의 박병호가 1위, 오재일은 WAR 1.96로 3위다.
이대로라면 4개월 후 FA 시장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1루와 우익수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선수들의 다년계약 체결까지 호재가 가득하다. 삼성 구자욱과 SSG 한유섬이 다년계약으로 일찌감치 시장에서 사라졌다. 예비 FA 중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터뜨리고 80타점 이상을 기록하는 클린업 타자는 채은성 뿐이다. 외국인선수 시장을 봐도 이제는 1루 포지션보다는 외야 포지션에 좋은 타자가 많다. 타선 보완이 절실한 팀이라면, 채은성을 바라볼 확률이 높다.
FA 계약만 머릿속에 넣고 야구하는 것은 아니다. 채은성은 “내 가치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기는 하다”면서도 “그렇다고 매일 FA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끔 이적하는 것을 떠올리는데 솔직히 말해 상상이 안된다. FA 생각을 하면 결론은 우승이더라. 우승하면 구단에서 FA를 다 잡지 않을까. 올해 꼭 우승해서 LG에 남고 싶다”고 밝혔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