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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기자]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꽃다발 들고 올라가기로 약속했죠.”
모두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프로 선수 또한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이 펼쳐지고 다른 과정을 거친다. LG 주장이자 유격수 오지환(32)에게 프로 무대는 험난하고 긴 비포장 도로였다. 입단 2년차부터 파격적으로 1군에서 꾸준히 기회를 얻었으나 그야말로 새하얀 백지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교시절 주포지션이 투수였던 선수가 프로 입단 후 유격수로 포지션을 전향했다. 아마추어 시절 내내 유격수만 한 선수들도 프로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데 오지환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포구부터 송구 동작, 상황을 계산하는 시야 등 모든 게 부족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천부적인 운동신경에 노력이 더해져 공수겸장 완성형 유격수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LG 류지현 감독의 비중도 적지 않았다. 류 감독은 수비코치로 부임한 2012년부터 오지환을 전담 마크했다.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3루수 혹은 외야수로 포지션 전향 논의가 나올 때마다 이를 반대하기도 했다.
류 감독은 지난 7일 과거를 돌아보며 “지환이의 경우 좀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처음에 나쁜 버릇이 있었고 이를 고치기 위해 작은 부분 하나하나 지적했다. 잔소리를 너무 많이해서 짜증도 났을 것이다. 글러브 위치, 포구 및 송구시 손의 방향은 물론, 걸음거리까지 지적했다”고 말했다.
과거 류 감독과 오지환의 훈련은 팀 내부적으로도 화제가 됐다. 캠프 기간 둘은 수없이 많은 공을 치고 받았다. 펑고를 치는 사람, 혹은 받는 사람 둘 중 한 명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몇 시간씩 훈련이 이어졌다. 특훈을 넘어 살인적인 훈련을 했던 기억이 류 감독과 오지환의 머릿속에는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류 감독은 “당시 훈련하면서 지환이에게 ‘골든글러브 하나는 받아야 우리가 지금 고생하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다. 네가 골든글러브 받을 때 내가 꼭 첫 번째로 꽃다발을 들고 나가겠다’고 했다. 시상식 때 꼭 들고가겠다고 약속했다”며 이제는 추억이 된 순간을 회상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긴 인내 끝에 열매를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대로 정규시즌이 종료된다면, 12월초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오지환과 류 감독이 나란히 무대에 설 확률이 높다.
오지한은 지난 7일까지 타율 0.268 22홈런 18도루 76타점 65득점 OPS 0.826을 기록하고 있다. 리그 유일의 20홈런을 돌파한 유격수이며 OPS 또한 1위다.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제공) 4.77로 유격수 부문 WAR 독보적인 1위다. 포지션 구분없이 야수진 전체 WAR에서는 4위에 자리하고 있다. 오지환의 통산 첫 골든글러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프로에서 모든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1군 무대는 특히 그렇다. 지도자에게는 육성보다 승리가 중요하다. 살얼음판 경쟁 세계 속에서 몇몇 선수들은 제대로 기회를 받지도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다. 하지만 류 감독과 오지환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봐도 무방하다. 1999년 류지현 이후 첫 LG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 또한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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