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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지난 9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2023 AFC 아시안컵 대한민국 유치 알림대사 발대식에서 유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그저 실소만 나온다. 어차피 승산 없던 게임인데, 한국 축구 외교력 부재만 다시 증명한 것 아니냐.”

한국이 아시아 축구 최고 권위 대회인 아시안컵 개최를 63년 만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1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2023년 AFC 아시안컵 개최지로 카타르를 선정했다. 카타르는 11월 예정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시작으로 내년 아시안컵, 2024년 23세 이하(U-23) 아시안컵까지 연달아 개최하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A대표팀이 참가하는 아시안컵이 카타르에서 열리는 건 2011년 이후 12년 만이다.

2023년 아시안컵은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코로나19 재유행을 이유로 지난 5월 개최권을 반납했다. 이후 한국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 주도로 윤석열 정부의 도움까지 받아 아시안컵 유치전에 나섰다. 카타르, 인도네시아와 유치 경쟁을 벌였다. 아시안컵은 1956년 창설됐다. 국내에서 대회가 열린 건 1960년(2회). 딱 한 번이었다.

정 회장과 전한진 사무총장 등 KFA 고위 관계자는 집행위 회의 기간에 맞춰 말레이시아로 날아가 유치 작업을 벌였다. 장기간 아시안컵 개최를 하지 못했을뿐더러 중국이 개최권을 포기한 만큼 같은 동아시아 지역인 한국에서 여는 게 명분이 있고 아시아 축구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지속해서 어필했다. 앞서 지난달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아시안컵 유치 알림대사 발대식을 열고 “K-컬쳐와 융합한 축제의 장”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냈다.

MALAYSIA SOCCER AFC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왼쪽) AFC 회장이 2023 아시안컵 개최국이 된 카타르축구협회의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카타르 회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쿠알라룸프르 | EPA연합뉴스

그러나 한국의 개최 꿈은 처절하게 짓밟혔다. AFC 집행위는 카타르가 주요 메이저 대회를 독식하는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했다. AFC 사정에 능통한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카타르는 아시안컵 유치 신청을 하면서 참가국의 항공료와 체재비는 물론 인건비를 포함한 대회 운영비 전체를 지원하는 조건을 매겼다. 여기에 올해 열리는 월드컵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도 장점이었다. 이 관계자는 “FIFA가 48개국 월드컵을 추진한 것처럼 현재 세계 축구는 철저하게 경제 논리로 돌아가고 있다. AFC도 카타르 등 ‘오일머니’를 앞세운 중동 지배에 놓인 지 오래전”이라고 강조했다. 2027년 아시안컵 개최국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유력하다. 대회 창설 이래 처음으로 3회 연속 중동 국가(2019년 UAE 개최)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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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오일머니’, ‘중동 카르텔’ 등으로만 한국 개최 실패 요인을 단정할 수 없다. 축구계 안팎으로는 KFA 정몽규 체제의 ‘외교력 부재’가 장기화하는 것에 비판 목소리가 크다. 원로 축구인 A씨는 “정 회장은 3년 전 FIFA 평의회 위원과 AFC 부회장직 선거에서 낙선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축구가 목소리를 낼 창구를 사실상 모두 잃었다. 2023 아시안컵 유치전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도 하지 않았느냐”며 “중동 자본력을 언급하기 전에 외교력 복원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따져 묻고 싶다”고 말했다.

축구 행정 전문가인 B씨는 “외교라는 건 꾸준함과 윈·윈이 기본이다. 과거처럼 사람 만나서 찻잔 세트 선물하고 와인 한잔한다고 다 되는 시대가 아니다. 카타르 등 중동은 그저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대회 유치에 관한 역량과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애초 승산 없던 게임이었는데 KFA와 선수 출신 행정가 등은 이렇다 할 유치 전략 없이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도 명확하게 조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게인 2002’ 타령만 했다. 부끄러운 현주소”라고 강도 높게 말했다.

정몽규
최승섭기자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KFA 54대 회장으로 세 번째 한국 축구 수장직을 맡았는데 ‘외교력 복원’이 최우선 과제로 꼽혔다. 그러나 KFA 내부에서도 지난 3년간 외교를 화두로 한 특별한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KFA 사정을 잘 아는 C국장은 “정 회장이 이미 AFC에서 지지를 못 받은 지가 한참이 됐는데 실무진부터 예스러운 방식의 유치 외교전을 펼쳤다고 들었다. 아마 (유치 성공이) 안될 줄 알면서 허탈한 마음으로 뛰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언급했다. 단순히 아시안컵 유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 축구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또 다른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게 아니냐고 우려 목소리가 가득하다.

한편, KFA는 ‘유치 실패에 따른 깊은 반성과 함께 향후 국제경쟁력과 축구 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실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