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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기 중계에 등장한 ‘맑눈광’ 김아영.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K리그도 문화의 메인스트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스포츠 중계는 원래 딱딱하고 정형화된 콘텐츠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최대한 ‘말랑말랑하게’ 제작하려 해도 한계가 뚜렷하다. 사전·사후 인터뷰, 경기 중계 등에 무언가를 더하기 어려운 구조다. 하이라이트를 내보내거나, 중계석의 특이한 관중을 잡는 정도가 전부다. 재미, 혹은 대중성 면에서 다른 문화 콘텐츠에 뒤질 수밖에 없다.

올시즌 K리그1 중계방송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스포츠 중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중계 및 제작에 OTT 서비스 업체 쿠팡플레이가 합류한 덕분이다. 쿠팡플레이는 매 라운드 한 경기를 ‘쿠팡 플레이 픽(쿠플픽)’으로 선정하고, 이 경기를 하나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제작해 송출하고 있다. 킥오프 한 시간 전부터는 풍성한 볼거리로 프리뷰쇼를 제공하는데 재미와 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대중성 있는 스타들을 섭외해 중계의 일부로 끌어들여 큰 화제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초청하는 게 축구장 셀럽 이벤트의 전부였다. 노래 한 두곡을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 이상은 없었다. 이와 달리 쿠팡플레이는 아예 이들을 중계에 참여시켰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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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 개막전에 등장한 다나카.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개막전에서는 코미디언 김경욱이 ‘부캐’로 활동하는 다나카가 울산문수경기장에 등장했다. 다나카는 중계진과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문선민의 ‘관제탑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일본인이라는 설정을 이용해 두 팀에서 뛰는 일본 선수들을 응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하프타임에는 관중 인터뷰까지 하며 일일 리포터로 변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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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 중 직접 인터뷰를 하는 김아영.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2라운드에서는 ‘맑은 눈의 광인(맑눈광)’을 연기하는 김아영이 전주월드컵경기장을 방문했다. MZ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 두 팀의 막내급 선수들을 콘셉트에 맞게 인터뷰했다. 그리고 중계진과 만담을 하는 등 축구를 예능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호평 받았다.

두 사람은 최근 문화 콘텐츠의 주 소비층인 1030 사이에서 뜨거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시점으로 문화의 주류에 선 캐릭터들이 K리그에 등장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 콘텐츠로 보면 비주류에 가까운 K리그가 대중의 관심을 끌 기폭제가 될 만하다. 실제로 이들을 경기장, 혹은 온라인 상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앞으로도 화제의 인물을 섭외해 중계에 합류시킬 계획이다. 쿠팡플레이 측 관계자는 “라운드마다 새로운 출연자가 확정될 것이다. 엔터 요소를 더해 지루할 수 있는 프리뷰 분석을 재미있게 유연하게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스케일을 보면 막대한 투자는 불가피해 보인다. 사실상 적자를 보는 구조에도 쿠팡플레이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로 K리그 중계 콘텐츠의 질 향상에 집중할 전망이다.

중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쿠팡플레이가 콘텐츠 확보에 진정성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라며 “그동안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스포츠 콘텐츠를 확보하는 동시에 서비스 이용자를 묶어놓는 효과까지 기대하는 것 같다. K리그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행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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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인터뷰에 응한 이병근 수원 삼성 감독.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셀럽의 등장이 전부는 아니다. 인터뷰 형식도 전과는 아예 다르다. 경기 전 딱딱하게 서서 형식적인 말만 주고 받는 인터뷰에서 탈피해 양 팀 감독들이 중계진을 직접 대면해 앉은 채로 편하게 인터뷰를 했다. 전보다 더 다채롭고 의미 있는 답변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사전 제작한 선수 인터뷰를 통해 경기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풍성한 볼거리로 경기를 예열하는 효과를 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사실 워낙 예민한 시간대라 구단의 협조가 필수였다. 그래도 구단, 감독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응하고 있다. 쿠팡플레이의 정성을 다 알기 때문에 어려운 선택을 해줬다. 구성원들의 협조가 있어 중계의 질도 올라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다채로운 그래픽 활용, 실시간 경기 분석, 17대의 카메라를 동원한 시원한 영상미, 초고속 카메라, 드론 활용 등으로 중계의 질이 급상승한 모습이다.

그 결과, K리그 중계는 2시간짜리 경기가 아닌 3시간에 육박하는 ‘스포츠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스포츠를 통틀어 보기 드문 ‘고퀄’ 중계로의 업그레이드다. 연맹 관계자는 “아직 초반이고 라운드당 한 경기일뿐이지만 분명 고무적인 변화라고 본다. K리그가 스포츠 중계의 새로운 지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