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홍콩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안컵(BFA)’에서 소중한 동메달을 목에 걸고 지난 2일 귀국했다. 대표팀을 이끈 전(前) LG·롯데 사령탑 양상문(62)감독은 8월 초 열릴 다음 대회인 ‘2023년 세계야구월드컵(WBSC)’ 구상에 한창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창피는 당하지 않겠다는 신념 하에 오늘도 밤낮없이 야구 생각뿐이다. 스포츠서울이 창간 38주년을 맞아 양상문 대표팀 감독에게 세계대회 출전 각오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비인기 스포츠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느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 롯데자이언츠, 태평양 돌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양상문은 언제나 ‘좌완 에이스’였다. 프로야구 통산 41경기 완투하는 동안 10번의 완봉 기록을 가진 그는 은퇴 후 지도자로서도 창창 대로를 달렸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22년 12월 실업·프로팀이 전혀 없는 비인기 중의 비인기인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했다. 스타 선수이자 스타 감독이었던 양상문의 큰 결심이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과 스포티비(SPOTV) 해설위원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비인기 종목을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사령탑 자리를 수락했다.

막상 마주한 ‘여자야구’ 현실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명색이 국가대표팀이었지만 메인 스폰서를 대회 2달 전까지 구하지 못했고, 국적기를 탈 돈이 없어 홍콩 저가 항공을 타고 결전지로 향했다. 대표팀은 여전히 오는 8월 초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야구월드컵’에 갈 자금을 구하는 중이다.

이 때문에 양상문 감독에게 지난달 말부터 2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안컵(BFA)’ 소감을 묻자 “비인기 스포츠 종목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꼈다. 소외된 스포츠를 위한 좋은 제도가 빨리 정착되어야 할 것 같다”라는 말부터 나온 이유다.

양 감독은 “결국은 선수들이 마음 놓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경기장 같은 인프라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체육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비인기 종목에선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앞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감독이 본 ‘여자야구’ 선수들은 프로 선수들과 다른 눈빛을 갖고 있었다. “‘헝그리 정신’과는 다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계적인 지도’를 향한 ‘갈망’이 느껴졌다.” 여자 선수들의 그 갈망 어린 눈빛이 양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로 이끌었다.

실제로 대표팀 선수들은 양 감독이 자신의 풍부한 프로야구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지도를 펼치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대표팀 한 선수는 “감독님 밑에서 배우고 싶어 대표팀에 지원했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선수들은 리틀야구단을 벗어나면 속할 수 있는 엘리트 팀이 없어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야구를 향한 열정은 남녀 모두 같은데 여성을 위한 배움의 공간이 없었던 차에 양 감독이 프로야구 스타 선수 출신 코치진과 함께 대표팀에 부임하자 선수들이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양 감독은 자신을 시작으로 프로야구 감독·선수 출신들이 여자야구 발전에 공헌해주길 바랐다. “나도 실제로 해보니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더라. 그래도 재능 많은 분이 오셔서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 중 일부는 실력을 더 발전시켜 몇 년 내에 실업리그가 있는 일본에 가서 뛰고 싶어 한다. 부상으로 이번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한 ‘여자야구 간판’ 김라경도 지난해 일본 실업팀 ‘아사히 트러스트’에 입단한 바 있다. 양 감독은 “최소한 시·도 단위의 팀이 만들어져 여자야구가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도 생겨나고, 야구를 직업으로 하고 싶어 하는 여자 선수들을 위한 실업팀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력을 높이려면 자신만의 체계적인 훈련법이 있어야 아직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그것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 감독은 “(대표팀 외야수 양)서진이가 근력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대표팀 투수 박)민성이에게는 (일본의 살아있는 전설)사토 아야미가 몸 푸는 장면을 보여주며 ‘너도 저런 식으로 자기만의 루틴을 갖고 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체계적인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아직 불모지지만 여자야구는 발전할 날밖에 남지 않았다. 오는 2026년 일본 아이치·나고야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AG)’에 여자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논의되고 있다. 개최국 일본이 여자야구 최강국인 만큼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양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 대표자 회의에 갔을 때는 3년 뒤 열릴 AG에 시범종목으로까진 확정됐다고 하더라”며 미소 지었다. AG 같은 규모있는 국제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면 자연스럽게 지원이 늘어난다. 시·도 단위 실업팀이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양 감독은 현재 오는 8월 8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야구월드컵(WBSC)’ 준비에 한창이다. 대한민국은 캐나다, 미국, 멕시코, 호주, 홍콩과 함께 A조에 속했다. 신체조건이 월등하고 힘 있는 국가들을 상대하기 위해 대한민국 여자야구 대표팀은 또 한 번 변신을 준비한다. 태극기의 무게감을 극복할 경쟁 구도 심화와 최고 선수로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et16@sportsseoul.com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