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기자] “선발을 해보긴 했어요. 그런데 할 때마다 결과가 안 좋아서···”
올해 처음 1군 무대를 경험하고 있음에도 흔들림이 없다. 두려움 없이 상대 타자를 돌려세운다. 140㎞ 후반대 속구와 헛스윙을 유도하는 스플리터, 땅볼 유도에 용이한 슬라이더까지 중간 투수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씩 증명해내며 필승조로 도약했다. 매년 새 얼굴이 등장하는 LG 마운드에 또 하나의 기둥이 된 우투수 유영찬(26)이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고교 시절 투수로 전향한 만큼 투수로서 경험이 부족했다. 대학 입학 후 구속이 증가했으나 드러난 기록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LG 스카우트는 꾸준히 유영찬을 주시했다. 부드러운 투구 메커닉을 주목하며 대졸 선수라 해도 프로 입단 후 구위가 더 좋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2020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43순위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이천에서 가능성을 보였고 LG 구단은 일찍이 군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군 복무를 마친 유영찬은 빠르게 실전 감각을 찾으며 퓨처스리그에 등판했다. 경헌호 투수코치는 올해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유영찬을 캠프 명단에 넣었다. 당시 경 코치는 히든카드 질문에 자신 있게 유영찬을 언급했다.
경 코치의 자신은 현실이 됐다. 염경엽 감독 또한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유영찬의 투구를 보고 새로운 필승조가 될 것을 확신했다. 필승조 3명으로는 시즌을 운영할 수 없다며 불펜진 6, 7명이 모두 필승조로 활약하는 청사진을 그렸다. 유영찬은 개막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필승조로 올라섰다.
청사진이 실현되며 불펜진은 청신호다. 시즌 초반에는 기존 필승조 고우석, 정우영, 이정용이 나란히 부상 혹은 부진으로 불펜이 흔들렸는데 이제는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유영찬, 박명근, 함덕주가 새로운 필승조를 구축했고 백승현도 부상 복귀 후 활약하고 있다. 김진성을 포함해 리드하는 상황에서 승리를 지키는 투수만 8명에 달하는 LG 불펜이다.
하지만 선발진은 여전히 물음표다. 불펜은 포화 상태인데 토종 선발진은 정반대다. 임찬규 외에 토종 선발투수에게 5이닝 이상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떠오른 게 유영찬의 선발 전환이었다. 부드러운 투구 메커닉과 강한 구위를 지닌 유영찬이 부족한 토종 선발진을 채워주는 모습을 머릿속에 넣었다. 현재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임찬규, 이민호, 이상영 외에 2군에 있는 김윤식, 감효종, 이지강, 손주영 등이 선발 후보군이지만 모든 옵션을 소진할 경우 유영찬을 마지막 카드로 삼았다.
염 감독은 지난 16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정 안 되면 기회가 영찬이까지도 갈 수 있다. 그런 일은 없는 게 좋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안 되면 영찬이를 2군에 내려서 투구수를 늘리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이게 마지막 카드”라고 말했다.
이날 유영찬은 7회초 마운드에 올라 1.2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몸에 맞는 볼을 범해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몸에 맞는 볼로 2사 만루가 됐는데 다음 타자 강승호를 계획한 대로 땅볼로 잡았다. 8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아웃카운트 2개를 더 올리고 투구를 마쳤다.
경기 후 유영찬은 “벤치 클리어링 후 코치님께서 ‘신경 쓰지 말고 네 공 던져라’고 하셨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고 내 공 던지려고 했다. 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미소 지었다.
선발투수 전환에 관한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영찬은 “군대 가기 전, 그리고 군대 갔다 온 후 퓨처스리그에서 선발로 나간 적이 있다. 선발을 해보긴 했는데 할 때마다 결과가 좀 안 좋았다”면서 “스태미너를 좀 많이 키우면 모르겠는데 아직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시즌 중에 선발로 가는 것은 좀 어렵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영찬은 “지금은 내가 맡은 상황에 맞춰 잘하고 싶다. 우리 선발투수들이 잘할 것으로 믿는다. 나는 우리 선발들 믿는다”고 재차 시즌 중 선발 전환은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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