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미국프로골프(LPGA)투어에서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개척자’ 박세리(46)은 최근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경쟁력이 약화했다는 지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LPGA투어는 세계에서 골프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경쟁하는 무대”라며 “우승을 밥먹듯 하다가 최근 주춤한 것을 두고 한국 선수들의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있는데, 여전히 많은 선수가 우승에 도전 중이다. 그 자체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세리는 “시스템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한국 선수는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싸움을 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 사이에서 꾸준히 우승에 도전하는 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경쟁력이 약해진 것이라기보다 다른 선수들의 경쟁력이 향상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우리 선수들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지만,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자극받은 아시아 선수들의 노력이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에비앙챔피언십 등에 출전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선수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성유진은 “LPGA투어는 1타로 순위 등락이 엄청나게 바뀐다.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박민지 역시 “KLPGA투어 선수들의 경쟁력을 확인한 점도 소득이지만, 선수 뎁스에서 LPGA투어는 다른 레벨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실제로 올해 LPGA투어는 아시아 선수들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한국과 태국이 끌어가던 곳에 중국 일본 등의 어린 선수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메이저대회 우승자만 봐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은 중국인 인뤄닝이 우승했고, 셰브론 챔피언십은 베트남계 미국인 릴리아 부가 패권을 차지했다. US여자오픈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알리슨 코푸즈(미국),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사상 첫 프랑스인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셀린 부티에는 부모가 태국인이다. 미국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하고 LPGA투어 데뷔전에서 우승한 로즈 장 역시 중국계 미국인이다.

최장수 세계랭킹 1위였던 고진영(28·솔레어)은 “LPGA투어는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아시아 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늘었다”며 그 원인을 부모 영향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 부모님 못지않게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분을 정말 많이 봤다. 특출난 기량을 가진 어린 선수가 자연스레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의 열정은 한국을 따라올 곳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조기유학은 물론 자녀의 성공을 위해 이민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은 K-골프가 세계수준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아시아계 부모들이 한국 부모처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이뤄냈다는 게 고진영의 평가다.

고진영은 “다른 나라는 LPGA투어 진출을 목표로 삼지만 한국 선수들은 꼭 그렇지는 않다. KLPGA투어가 잘 운영되다보니 굳이 LPGA투어에 도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선수가 많다. 세대가 바뀌면서 생긴 생각의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으니 정체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KLPGA투어는 매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 이들 모두 경쟁력을 가진 선수들”이라면서 “이 선수들이 미국에 온다면 기술적으로는 딱히 조언해줄 게 없을 정도”라는 말로 빅리그 진출을 독려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