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배우근 기자] 지난 7월 성남시 체육회장배 유도대회가 열렸다. 개회식 현장 영상이 짧게 올라왔는데 아이들이 볼모로 잡힌 듯한 모습이다. 뜬금없는 민속공연도 보인다.

그 영상에 “이 정도면 추태 아닌가. 9시부터 경기 시작했는데 10시40분부터 애들 전부 모아놓고 개회식 한다더니 이러고 있다. 같은 어른으로 정말 고개를 못들겠다”라는 글이 붙어있다. 시대착오적 행사를 보며 어른으로서 부끄럽다는 반응이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에코센터에서 제1회 강남구 유도회장배가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대회도 똑같았다.

선수들은 새벽같이 개체를 마치고 경기에 돌입했는데, 오전 10시 반이 되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장내를 정리했다. 경기가 멈춘 매트위에 초·중·고·대학 그리고 일반부 선수들이 바둑돌처럼 앉았다. 경품행사에 이어 개회선언과 내빈소개가 이어졌다.

사회자는 서울시와 강남구 체육회 회장단, 서울·강남의 유도계 임원과 원로를 소개했다.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단상에 자리한 스무명 이상의 내빈이 빠짐없이 호명됐다. 사회자는 불참한 박진 외교부장관(강남을 국회의원)의 축전도 대독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상식이 진행됐다. 구청장,서울시의회의장,구의장,서울특별시체육회장,유도회장 등의 이름을 딴 각종 시상이 계속됐다. 수상자는 대부분 강남구 유도회 임직원인 듯 했다.

선수들은 내빈 소개와 시상 하나가 끝날 때마다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행사를 주목하거나 축사를 경청하는 선수는 적었다. 개회식이 끝나고 내빈은 점심을 위해 자리를 떴다. 선수들은 남은 경기를 치렀고 식사는 미리 주문한 도시락으로 경기장 내에서 해결했다.

경기 중간에 열린 개회식에 대한 현장 반응은 냉담하다. 중학교 모 선수는 “다음 경기에 출전해야 하는데 몸이 식어버렸다. 직전 경기에서 이겨 느낌이 좋았는데 이어질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한 학부모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회식인지 어이가 없다”며 개탄했다. 대회의 주인공이 매트 위 선수가 아닌 단상의 내빈이라는 지적이다.

강남구 유도회 유인기 회장은 경기 도중, 선수들을 집합시키는 개회식에 대해 “시대적으로 맞지 않은 건 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이전과 비교하면 바뀌고 있다. 전엔 다 서서 했다. 지금은 선수들이 앉아있다. 개회식 시간도 줄이는 등 변화는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내빈소개에 관해선 “유도대회를 지원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고 원로 소개는 유도가 교육적 측면이 강하기에 후배들 앞에 소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견 맞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예시예종(禮始禮終)의 유도 후배들은 경기 외적으로도 배운다. 인사받기에 연연하는 원로들의 모습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지 의문스럽다.

이는 비단 유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생활체육 대부분 종목에서 이런 방식의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유 회장의 발언처럼 체육계 관계자들은 이미 스스로 답을 알고 있다. 내빈에 맞춘 개·폐회식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 방식은 선수들을 들러리로 만들 뿐이다. 그 결과, 이날 경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린 선수들은 원하지 않게 박수 부대로 전락했다. 그것도 대회 도중에.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한심한 작태다.

시대에 맞지 않은 건 바꿔야 한다. 이를 방치하는 건 스포츠정신과도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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