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기자]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 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 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1992년 3월 20일 발매된 故김광석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사 중 일부다. 이 노랫말은 현재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학전 블루(대표 김민기, 이하 ‘학전’)’를 향한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마음과 비슷하다.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가 사재를 털어 지난 1991년 3월 개관한 ‘학전’은 33살 생일인 2024년 3월 15일 폐관을 결정했다. 팬데믹 이후 이어진 경영 악화와 설립자인 김민기의 암투병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같은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학전’ 출신 대중문화예술인들은 한국공연문화의 발원지인 학전이 폐관되는 아쉬움과 더불어 학전을 지키기 위한 호소를 잇기 위해 ‘학전 어게인(AGAIN)’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박학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위치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지하 1층 KOMCA 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학전은 이자리에 있는 많은 후배들을 키워낸 의미있는 공간이다.그래서 폐관이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가온다. 김민기 형님이 편찮으신 상황에서 많은 뮤지션, 배우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큰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1994년 학전에서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1호선’을 통해 황정민,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 등과 함께 일명 ‘독수리 5형제’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배우 설경구는 “연기한 지 30년이 됐는데, ‘학전’은 저의 시작점”이라며 “저는 포스터를 붙이다 ‘지하철 1호선’에 탑승했다. 저는 노래가 안 됐지만, 저를 끝까지 끌어주신 분이 김민기 선생님이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학전 무대에 오르겠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형석은 “저는 학전에서 첫 데뷔를 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김광석, 동물원, 노영심 피아노를 같이 치면서 시작했다. 그런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든 분들이 함께 모여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전 대표 김민기에 대해 “형(김민기)의 노래를 젊은시절 시위할 때 많이 불렀다. 그래서 정서가 셀 줄 알았는데, 철이 들고 나서 노래를 자세히 들어보니 서정성을 항상 잃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서정성이 모든 음악의 공통 주제였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이런 것들은 형이 준 너무나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K팝이 글로벌하게 잘되고 있는 근간에는 형 음악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형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김민기 형이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의미 있는 공간인 만큼 ‘학전’의 폐관을 막기 위해 대중문화예술인들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박학기는 “학전의 재정 상태가 엉망이다. 내가 저작권협회 부회장이지만 김민기 선배님은 개인 저작권까지 모두 학전에 쏟아부었다. 개인사업자라서 책임도 본인이 다하셨다. 안타깝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리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우리가 모은 모든 돈은 학전의 재정상태와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쓰일 것”이라고 알렸다.

‘학전’ 폐관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연극인 출신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연극계에서 학전의 역사적, 상징적 의미와 대학로 소극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이라며 “소극장을 활성화하고 연극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다양한 공간지원 사업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