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청주=원성윤기자]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20년을 졌어요.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유소년부터 육성하면서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차근차근 따라왔어요. 그리고 이제 역전됐어요. 앞으로 몇 년간은 이기기 쉽지 않을 겁니다.”

‘분데스리가 전설’로 불리는 윤경신 두산 감독은 17일 스포츠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2023년 한국 핸드볼계를 진단하며 한탄했다. 1년에 열 경기도 소화하지 못하는 대학팀의 현실, 이로 인한 기량 저하로 실업팀 진출을 포기하게 되는 선수들, 선수 인프라 부족으로 실업팀에서 차출돼 피로 누적으로 선수 수명이 단축되는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윤 감독은 1996년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 후 통산 최다 득점(2905골), 최다 득점왕(7회)을 기록하며 독일 핸드볼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잡이로 불린다.

최근 올림픽 진출에 실패한 남자 핸드볼과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낮은 성적인 22위를 기록한 여자 핸드볼의 현 주소에 대해 “대학에서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지 않고, 당장 성적 내기에 급급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일례로 여자 청소년 핸드볼 대표팀은 지난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놀라움과 기쁨을 안겼다. 윤 감독은 “18세에서 23세까지의 시기가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며 “이 선수들이 청소년 핸드볼에서 성적이 좋다가 성인팀에 들어서 꺾이게 되는 이유가 대학교에 갔을 때 경기수가 많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경기 경험이 적어 실력이 퇴보하게 된 탓”이라고 지적했다.

핸드볼계에서는 현재 성인 국가대표팀이 심각한 성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선수들이 2주 동안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하고 나가는 문제를 거론한다. 팀 워크를 서로 맞춰볼 시간적 여유도 없는데다 실업리그에서 차출된 선수들이 피로를 안고 대표팀에 나가기 때문에 성적이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학생 선수들은 아주 뛰어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표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핸드볼의 성적 부진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윤 감독은 “우리 핸드볼이 리그로 갈 것인지, 국제대회로 갈 것인지를 정확하게 정해야 한다”며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대학생 선수들을 대표팀에 기용해서 경기력을 만들고, 대학생 팀이 외국 경험을 통해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5년 윤 감독은 자신이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감독을 맡게 됐을 때, 과감하게 고교 출신 선수였던 김연빈(라이트백), 하무경(레프트윙)을 대표팀으로 차출했다. 이에 대해 윤 감독은 “우리 같은 지도자들이 만들어주지 않으면, 어린 선수들은 스스로 올라오지 못한다”며 “끊임없이 꾸지람을 주고 피드백을 주면서 만들어주는 기회가 앞으로 더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장 윤 감독도 두산만 해도 내년 1월에 있을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로 인해 12월에 팀에서 주전 5~6명의 선수를 대표팀으로 차출해야 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윤 감독은 “지금 분데스리가 수준은 2000년 이후 기량과 팀워크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부터는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갭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며 “일본이 스위스 등 유럽으로 유학을 계속 보내고 공부시키고 보내고 있는 건 큰 리그를 경험하고 오면 시야도 넓어지고, 스카웃도 잘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끝으로 윤 감독은 핸드볼 리그의 활성화를 위해 “인천 김진영, 두산 하무경 등 같은 스타 선수들을 미디어에 많이 노출시키면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며 “비인기종목 선수들도 이렇게 생활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일반 팬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