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지난해 개봉한 영화 ‘외계+인’ 1부의 아쉬운 성적은 배우 김태리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

데뷔작인 ‘아가씨’(2016)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최고 흥행작이었고 차기작인 ‘1987’(2017)은 720만 관객이 관람했다. 저예산 영화인 ‘리틀 포레스트’(2018)도 손익분기점은 훌쩍 넘었고, SBS ‘악귀’(2023)는 오컬트 작품임에도 10%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아무리 영화의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외계+인’의 스코어는 배우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2부가 남아있으니 손을 놓을 수도 없었다.

김태리는 계속해서 바뀌는 대본에 맞춰 수십 차례 녹음기를 켰다. 다른 작품 촬영을 마치고 온 늦은 밤에도 녹음을 반복했다. 2부를 꼭 잘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힘을 썼다. 그 뜻이 통해서였을까, ‘외계+인’ 2부에는 최동훈 감독 특유의 영화적 쾌감이 터진다.

김태리는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작품의 흥행여부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일단 최선을 다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며 “2부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빨리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응원하는 것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안의 반전, 설명하기 곤란했다”

‘외계+인’ 1부가 무수히 많은 정보를 마치 모랫바닥에 휙휙 던져 놓는 형태라면, ‘외계+인’ 2부에선 미스터리하고 복잡했던 단서들을 하나씩 회수했다. 매우 간결한 방식으로 숨겨놓은 실체를 꺼냈다. 그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김태리가 연기한 이안이다.

현대에서 우연히 가드(김우빈 분), 썬더(김우빈 분)와 고려로 넘어온 뒤 세상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10년의 모진 삶을 견딘 인물이다. 신검을 찾고 현대로 돌아가 위기를 막으려는 대의를 갖고 움직인다. 정의감이 투철한 이안에겐 놀랄만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

“그 반전이 저한테는 엄청난 숙제였어요. 연기를 할 때도 그렇고, 인물을 설명할 때도 어려웠어요. 저는 이안이 가진 반전의 기미를 느낌으로 연기했어요. 감독님은 계속 그 느낌을 빼는 데 주력했고요. 누군가에게 이안을 설명할 때도 곤혹스러웠어요. 자칫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영화의 가장 중요한 걸 깨다보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외계+인’은 오락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 캐릭터 대부분이 유머러스하다. 무륵(류준열 분)을 비롯해 썬더, 신선 흑설(염정아 분)과 청운(조우진 분), 우왕(신정근 분), 좌왕(이시훈 분), 그리고 민개인(이하늬 분)까지, 시종일관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이들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는 게 이안이다.

“코미디가 짙은 영화지만, 제가 오락적인 롤을 맡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안은 중심 서사를 잡고 시간을 소개하는 캐릭터였어요. 제 캐릭터와 영화의 톤이 잘 섞일까 고민도 있었어요. 감독님과 상의 끝에 이 톤이 무조건 맞다고 여겼고, 믿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연기에 확신이 없어 늘 불안…이젠 기세로 밀어붙여”

김태리는 SBS 드라마 ‘악귀’에서 산영과 귀신을 휙휙 오갔다. 옷차림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가운데 표정만으로 두 얼굴을 그렸다. ‘외계+인’ 2부에서도 그 장기가 발휘됐다. 180도 태세 전환을 순간적으로 해버렸다. ‘악귀’와는 다른 강렬함이 있다.

“연기는 기세라 생각해요. 뻔뻔하게 해서 내가 정답으로 만드는 것이 연기죠. 이번 작품에선 CG와 함께 바뀌는데, 걱정이 많았어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서요. 그 걱정을 떨쳐 내는 게 숙제였어요. 그래서 더 뻔뻔하게 하려고 했어요.”

요즘 김태리는 무서울 정도의 상승세다. ‘아가씨’로 데뷔했을 때부터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였는데, 작품을 거듭할수록 연기 내공이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악귀’에서 아우라는 호평이 자자했다. 2023 SBS 연기대상의 자격이 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저는 항상 불안했어요. 늘 제 연기에 확신이 없었어요. 정답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분명 더 나은 지점이 있을 거라 여겼어요. 촬영 중 스트레스가 심했고, 제 직업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수준이었어요. 최근에는 ‘내가 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세 좋게 밀고 나가고 있어요. 덕분에 스트레스가 덜해요.”

올해는 tvN ‘정년이’로 시청자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가 배경으로, 소리 하나만큼은 타고난 소녀 정년의 여성 국극단 입성과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김태리가 타이틀롤이다.

“최 감독님을 통해선 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오정세 선배님과 대화하면서 소통을 배웠어요. ‘정년이’로는 뭘 배울까 기대가 돼요. 올해 안으로 선보일 것 같은데,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건강하게 ‘정년이’로 만나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