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도하(카타르)]강예진 기자] 얄궂은 운명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축구를 위해 힘썼지만, 이제는 한국을 ‘적’으로 상대한다.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김판곤 감독은 “한국을 괴롭힐 수 있을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남겼다.

김 감독은 지난 2022년 말레이시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국가대표선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그가 새출발을 알린 것이다.

김 감독 체제에서 말레이시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부임 5개월 만에 팀을 16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2022년에는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미쓰비시 컵에서는 준결승에 진출, 1차전서 태국을 이기는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감독으로서 첫 아시안컵에 나서는 김 감독은 12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한 호텔에서 본지와 만나 “홍콩 대표팀 감독으로 있을 땐 본선에 가지 못했다. 감독으로서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개인적으로 기쁘다”라며 운을 뗐다.

운명의 장난처럼, 김 감독은 한국을 ‘적’으로 만나게 됐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에 한국과 함께 묶였다. 맞대결은 오는 25일 오후8시30분이다. 김 감독은 “정말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다른 팀에는 패해도 부담이 없었을 텐데 하필 한국을 상대하게 됐다”면서 “지도자로서 평가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다. 23위인 한국과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다. 그럼에도 자신은 있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A매치 3경기서 2승1무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FIFA랭킹 100위권 안에 있는 팀을 상대로 좋은 내용과 결과를 챙겼다. 지난 8일 시리아와 평가전에서 2-2로 비긴 게 그 예다. 시리아는 FIFA 랭킹 91위다. 때문에 김 감독은 ‘조직력’의 강점을 믿고 있다.

그는 “조직력은 상당히 좋다고 본다. 우리는 0-0으로 비겨본 적이 없다. 강팀과 경기를 해도 1-1, 2-2 등 실점은 있어도 공격적으로 나간다. ‘락(Rock)’ 같은 경기 템포가 주를 이룬다. 후방이 오픈됐을 때 얼마나 잘 대처할까가 관건이지만, 대처 수준도 좋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 감독은 “한국을 이야기하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한국과 경기를 해도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팀적으로 제압당하기보다는 개인 능력에서 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은 손흥민(토트넘), 이강인(PSG) 등의 선수를 보유한 팀이다. 개인 자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최대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상당히 괴롭게 하거나, 체면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우리와 랭킹 차이가 많이 나기에, 우리가 10골을 내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말레이시아 국민들도 자랑스러워하는 경기를 치를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번 아시안컵은 본인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한국을 만나는 건) 상당히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선수들과 언제 경기해 보겠냐, 평생 못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고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면서 “아시안컵이 끝나면 월드컵 예선이다. 이 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어서 월드컵 최종예선에 나가는 것이 목표다. 43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에 왔듯이, 지속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kk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