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스코츠데일=윤세호 기자] “아예 생각 못 했다. 그냥 투수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1월23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22명의 유니폼이 바뀌었다. 최주환, 김강민 같은 친숙한 이름부터 단 한 번도 1군 무대에 오른 적이 없는 낯선 이름까지 많은 선수가 팀을 이동했다.
LG 우투수 이종준(23)은 후자다. 2020 신인 드래프트 9라운드 81순위로 NC에 지명된 그는 1군 경험이 없다. 퓨처스리그 등판도 2021년 8경기·19.2이닝에 불과하다. 더불어 2차 드래프트 당시 등록선수 명단에도 없었다. NC 선수나 지도자가 아니면 정보가 전혀 없는 미스터리 투수다.
그런 그가 2차 드래프트 3라운드 막바지에 지명됐다. 디펜딩 챔피언 LG의 유일한 2차 드래프트 지명자. 지명장에서도 이종준이라는 이름 석 자는 지극히 낯설었다. 지명을 결정한 LG 차명석 단장에게도 친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당시 차 단장은 “교육리그를 지켜본 김재현 총괄, 황현철 팀장의 추천이 있었다. 군 복무를 마쳤고 잠재력도 있다고 해서 지명했다”고 전했다.
당연히 이종준도 2차 드래프트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줄 몰랐다. 1군 애리조나 캠프에 참가 중인 그는 22일(한국시간) “2차 드래프트는 아예 생각을 못 했다. 그때 나는 NC 투수였다. 그냥 투수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2차 드래프트가 끝나고 형들이 축하한다고 하더라. 지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형들이 놀리는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진짜더라. 정말 많이 놀랐다”고 3개월 전을 회상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왜 LG가 자신을 선택했는지 이해했다. 이종준은 “교육리그에서 LG와 상대했는데 그때 잘 던졌다. LG전에 선발 등판해 2이닝 동안 딱 6명의 타자만 상대했다. 투구수도 30개가 안 됐다”며 “던지면서 나도 이제 프로 선수답게 야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하고 석 달 동안 교육리그 등판만 바라보며 훈련한 보람을 느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좋아서 LG가 나를 뽑아주신 것 같더라”고 밝혔다.
특징이 뚜렷했다. 신장 191㎝의 장신 투수가 강렬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140㎞ 후반대 속구를 던졌다. 속구 위주로 교육리그 LG 타선을 상대해 완벽한 투구를 펼쳤다. 단 한 경기지만 구위와 제구를 두루 증명했다. 2라운드 1순위까지 4명(이상규, 최성훈, 김기연, 오석주)이 지명돼 팀을 떠난, 2차 드래프트 최고 인기팀인 LG 입장에서 이종준은 충분히 긁어볼 가치가 있는 유망주였다.
자연스럽게 1군 캠프 명단에 포함됐다. 처음 밟는 미국 땅에서 관심을 기대로 바꾸고 있다. 염경엽 감독은 “종준이는 속구 테일링이 정말 좋다.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테일링이 강하게 들어간다. 그래서 속구는 몸쪽만 쓰고 바깥쪽은 없애기로 했다. 바깥쪽은 슬라이더와 커브만 던진다. 장점을 살릴 수 있게 피칭 디자인을 했다”고 말했다.
캠프 3일째부터 불펜 피칭에 임한 이종준은 지난 21일 첫 라이브 피칭에 임했다. 김현수, 박해민, 오지환, 홍창기, 오스틴 딘 등 주전 라인업과 마주했다.
이종준은 “첫 타자가 김현수 선배님이었다. 마운드에 오르려 하는데 상대가 김현수 선배님이라는 생각에 긴장이 엄청나게 됐다. 근데 막상 공을 던지려 하니 괜찮았다. ‘타자는 타자고 나는 투수니까 내 공만 던지자’고 생각했다. 흔들리지 않고 괜찮게 던졌던 것 같다”고 리그 최강 타선에 맞선 순간을 돌아봤다. 이날 이종준은 31개의 공을 던지며 속구 최고 구속 시속 147.5㎞를 기록했다.
둘도 없는 기회다. 프로 입단 5년 만에 처음으로 1군 캠프에 참가해 생애 처음으로 미국 땅도 밟았다. 무엇보다 사령탑 눈에 들었다. 염 감독은 “이종준은 잘 키워보고 싶은 투수”라며 “당연히 1군에 쓸 투수로 보고 있다. 우리 젊은 중간 투수 대부분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종준이도 그렇다”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불펜 히든 카드를 만들고 있음을 암시했다. 지난해 염 감독은 유영찬, 박명근, 백승현을 두 번째 필승조로 낙점했고 이들 모두 맹활약했다.
이종준은 “감독님께서 첫 불펜 피칭부터 나를 유심히 봐주셨다. 몸쪽 테일링이 좋다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했다. 이후 방향을 확실히 잡고 공을 던지고 있다”며 “야구 시작한 순간부터 1군에 오르는 것을 꿈꿨다. 1군 무대에 오른다면 라이브에서 김현수 선배님을 상대했을 때처럼 위축되지 말고 던지는 것만 집중해서 잘해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