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은별·함상범 기자] “얼마 전까지 못된 사람 연기해서 욕 많이 먹었어요. (웃음) 김민기 선생님과 20대를 학전에서 보낸 덕분이죠.”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의 주역 황정민은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콘서트’ 마지막 무대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5년 학전에서 열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배우로서 싹을 틔웠다. 아내인 김미혜 씨도 이곳에서 만났다. 관객들은 황정민을 비롯, 설경구, 장현성, 김윤석, 조승우를 ‘독수리 5형제’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독수리 5형제’는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로 곳곳에서 맹활약 중이다.

“젊으니까 열정만 넘쳤죠. 김민기 선생님께서는 제게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그때는 몰랐죠 당시 선생님의 가르침이 30년이 지나 여러분 앞에 ‘저 배우 황정민입니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학전은 33살 생일인 15일 폐관한다. 1991년 개관 이후 ‘배우는 못’(學田)이라는 이름처럼 대중문화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고(故) 김광석은 이곳에서 1000번 넘게 공연을 열며 또 하나의 전설이 됐다. ‘지하철 1호선’은 관객 73만명이 관람했다.

숱한 스타를 낳고 오랜 기록을 쌓았지만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투병이 겹치면서 끝내 폐관을 결정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학전 소극장을 재정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국내 유수의 기업들도 후원의사를 밝혔지만 김대표가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내가 없으면 학전도 없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학전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학전 출신 대중문화인들이 발을 벗고 나섰다. 지난 달 28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학전, 어게인 콘서트’가 바로 그것이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공연은 전석 매진돼 ‘피켓팅’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1년 3월 15일 학전소극장의 첫 공연을 장식했던 여행스케치와 그 여행스케치 무대의 게스트로 섰던 가수 윤도현이 첫 공연을 열었고 마지막 공연은 학전 ‘독수리 5형제’의 대표주자 황정민이 김민기 헌정 공연으로 학전의 마지막 공연을 장식했다.

출연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학전에서 추억을 되새겼다. 여행스케치는 “학전은 배울 학(學)에 밭 전(田)을 쓴다. 김민기 선생님께서는 늘 판은 내가 깔테니 새내기들이 모여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며 “현재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않다. 쾌유를 바란다. ‘학전 어게인’이 아닌 ‘학전 포에버’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윤도현은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희소암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섰던 그가 자신의 뿌리인 학전 무대에 선 마음이 어떨지 감히 짐작조차 어려웠다.

그는 공연을 마친 뒤 ‘스포츠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김민기 선생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늘 응원과 애정을 보내주셨다. 데뷔한 뒤에도 매번 선생님의 마음을 느꼈다”고 존경의 마음을 드러냈다.

게스트로 출연한 YB 베이시스트 박태희는 “학전이 있기에 YB의 ‘노래하는 윤도현’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가 선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기에 지금의 윤도현과 YB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11일에는 학전을 거친 배우 90여 명이 무대에 섰다. 최근 부친상을 치른 배우 오지혜, 나윤선도 슬픔을 억누른 채 학전무대에서 관객과 만났다. 배우 설경구는 “학전이란 이름이 사라져도 내게 학전의 DNA가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학전은 마지막이지만 제 마음 속 학전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제 다음 영화를 관람하신다면, 학전이란 이름 두글자를 기억해주세요.”(황정민)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