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실패를 예단하지 않는다. 한 해 부진해도 다음을 바라본다. 마운드가 특히 그렇다. 다다익선임을 머릿속에 넣고 최대한 많은 투수를 스프링캠프에 데려간다. 투수진 ‘플랜 A’가 무너져도 ‘플랜 B’를 펼치면서 버티는 LG다.

적색경보다. 필승조가 흔들린다. 유영찬 백승현 박명근 김진성으로 승리 공식을 마련했는데 백승현이 개막 일주일 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발진도 이닝 소화에 애를 먹는다. 5회 이전 불펜 문이 열리는 경우가 부지기수. 그래도 무너지지는 않는다. 선발 평균자책점 4.62, 중간 평균자책점 3.54로 불펜 야구는 유효하다. 작년처럼 마르지 않는 셈이 되는 모양새다.

희망에 기대지 않고 빠르게 계획을 수정했다. LG 염경엽 감독은 “야구가 늘 그랬듯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올해도 어쩔 수 없다. 처음 세운 계획을 밀고나가기 보다는 시즌을 치르면서 불펜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좋은 투수를 중요한 상황에서 쓰고, 안 좋은 투수를 편한 상황에서 쓰면서 승리조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의 매일 필승조와 추격조가 자리를 바꾼다. 김유영, 이지강, 이우찬, 윤호솔 등이 리드 상황 마운드에 오른다. 김유영의 비중이 특히 커졌다. 개막 시점에서는 추격조였으나 이제는 경기 후반 리드시 마운드에 오른다.

LG에서 시작은 좋지 않았다. 김유영은 지난해 유강남의 프리에이전트(FA) 롯데행에 따른 보상선수로 LG에 합류했다. 하지만 제대로 시즌을 치르지 못했다. 작년 6월 팔꿈치 뼛조각 수술로 시즌을 조기에 마치고 말았다.

선수와 지도자 모두 흔들리지 않았다. 보상선수 지명 시점에서 기대를 고스란히 유지했다. 캠프 명단에 포함됐고 캠프 평가전부터 부활투를 펼쳤다. 좌투수로서 까다로운 팔각도로 시속 140㎞ 이상의 속구를 던진다. 슬라이더의 횡적 무브먼트도 뛰어나 스트라이크만 들어가도 경쟁력이 있다. 지난 7일 잠실 KT전에서는 무사 1, 2루에서 중심 타선을 상대로 마운드에 올랐다. KT에서 가장 까다로운 천성호 로하스 강백호를 나란히 범타로 처리했다. LG가 득점하면 KT가 추격하는 경기 흐름이 김유영의 호투로 마침표를 찍었다.

윤호솔도 김유영과 비슷하다. 지난해 채은성의 한화행에 따른 보상 선수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LG 첫해에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지난 2월 동료들과 태평양을 건넜다. 올해 다시 필승조 도약을 바라본다. 작년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스프링캠프를 치른 김대현도 마찬가지. 셋 다 짧게나마 필승조로 활약한 경험이 있다. 염경엽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이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음 주자도 뚜렷하다. 염 감독은 지난 2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진행하면서 “올해 안 되더라도 내년에 데려갈 선수들을 미리 정해놓는다. 작년에는 김대현과 성동현이 그랬다. 코치들에게 대현이와 동현이는 올해 안 돼도 내년 캠프에 데려간다고 했다”면서 “다음 캠프에 데려갈 선수는 이종준이다. 당장 잘하면 좋지만 잘하지 못해도 내년 캠프에 데려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낯선 장면은 아니다. 1년 전에도 그랬다. 2022년 고우석은 세이브 1위, 정우영은 홀드 1위를 차지했다. 2023년에도 고우석과 정우영이 승리를 완성해줄 것으로 봤는데 시즌 초반부터 탈이 났다. 고우석은 부상, 정우영은 밸런스가 무너졌다. 둘 다 사실상 커리어로우 시즌을 보냈는데 대안이 나왔다. 캠프부터 준비한 유영찬 백승현 박명근이 빠르게 도약했다.

염 감독은 지난달 3일 애리조나 캠프를 마치며 선수단을 향해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는 된다”고 힘줘 말했다. 캠프에 참가한 선수 모두가 1군에 오를 것이며 1군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건넸다.

지난해에도 LG는 10구단 중 가장 많은 33명의 투수가 1군 마운드에 오른 바 있다.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고 결국에는 답을 찾았다. 올해도 그렇다. 작년처럼 계획이 틀어지고 운영이 어렵지만 여전히 염 감독의 머릿속에는 ‘전원 필승조’가 자리하고 있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