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 기자] 다양한 라인업으로 다채롭게 운영한다. 때로는 뚝심을, 때로는 작전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며 결과도 낸다. 공부하고 적응하는 노장 감독이 중심에 서면서 상승기류를 형성한 한화 얘기다.

만만치 않은 시작이었다. 시즌 중 지휘봉을 잡은 만큼 캠프는커녕 워밍업을 할 실전도 없었다. 프로 무대를 떠난지 6년이 지났기에 적응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였다.

기우였다. 한화는 지난 4일 김경문 감독 데뷔전부터 12일까지 8경기에서 5승 2패 1무. 승패 마진 ‘-8’을 ‘-5’까지 줄였다. 모든 팀이 그렇듯 한화도 핵심 선수 요나단 페라자가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타율 0.316 15홈런 OPS(출루율+장타율) 0.999를 기록한 팀 내 최고 타자가 없음에도 승리를 쌓는다.

페라자를 대체하는 선수가 나온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페라자는 없다. 하지만 타선을 이루는 9명의 타자가 조화를 이뤄 점수를 뽑는다. 번트와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찬스를 만들고 득점한다. 지난 12일 잠실 두산전 9회초가 그랬다.

선두 타자 이재원이 우전 안타로 출루한 후 대주자 하주석과 교체. 이도윤의 희생 번트로 1사 2루. 장진혁의 내야 안타로 1사 1, 3루가 됐다. 이 순간 이원석 타석에서 대타 문현빈을 투입. 문현빈은 바뀐 투수 이병헌의 3구 속구에 절묘한 스퀴즈 번트를 대면서 결승점을 뽑았다.

2구까지 강공에 임했던 타자가 순식간에 스퀴즈로 돌변해 상대의 허를 찔렀다. 경기 후 문현빈은 “강공으로 갔다가 작전이 나왔다. 많이 긴장됐다. 한 번에 성공해야 하는 작전이라 더 긴장됐다. 성공한 후에 일단 안도의 웃음부터 나왔다”며 “뛰면서 타구만 바라봤는데 조금 타구가 강했지만 다행히 코스가 괜찮았다. 운도 따랐다”고 미소 지었다.

예전 김경문 감독의 야구와는 궤를 달리한다. 두산에서 7년(2004년부터 2011년), NC에서 6년(2013년부터 2018년) 동안 사령탑을 맡았을 때 김 감독은 번트와 작전이 많지 않았다. 과감하게 주루플레이하는 뛰는 야구는 선호했으나 번트보다는 강공으로 시원하게 점수를 뽑는 것을 추구했다.

실제로 2016년과 2017년을 제외하면 김 감독이 지휘한 팀은 희생번트 부문에서 최하위권에 있었다. 가장 번트를 적게 댄 시즌도 6번에 달했다. 두산 시절에는 희생번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강공’ 팀 컬러였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은 “지금은 좀 (번트를) 대야 한다. 특히 상대 팀의 좋은 투수와 마주하면 번트해야 한다고 본다. 당분간은 번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다가 나중에 팀이 더 단단해지면 강공으로 가겠다. 힘이 생기면 우리만의 시원한 야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변칙만 추구하지 않는다. 마운드 운영은 특유의 뚝심으로 밀고 간다. 마무리 투수로 올시즌을 시작했으나 고전한 박상원, 늘 기대받는 왼손 강속구 투수 김범수가 그렇다. 김 감독은 “선수가 매일 잘할 수는 없다. 게다가 불펜 투수는 그 어느 자리보다 힘든 자리”라면서 “못해도 용기를 주고 때로는 눈감고 모른 척할 필요도 있다. 이렇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감독 부임 후 박상원은 5경기 평균자책점 1.80. 김범수는 4경기 평균자책점 제로를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김규연 또한 지난해 가장 좋았던 모습을 재현하면서 5경기 평균자책점 제로다.

두산 시절부터 NC 시절까지 거의 매년 ‘언더독’이었다. 객관적 전력에서 최강 평가를 받은 시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도 꾸준히 반전을 일으켰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팀을 운영하면서 상위권에 자리했다. 무명 선수를 유명 선수로 올려놓았다. 은퇴 위기에 처한 베테랑의 선수 생명을 연장했다.

한화에서 보여줄 모습도 비슷할 수 있다. 적응기가 지나면, 몰라보게 단단해진 한화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