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정다워 기자] 3년 전. 한국 태권도는 일본 도쿄에서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한국 태권도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에 머물렀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종주국의 자존심은 구겨졌다. 태권도가 그만큼 글로벌 스포츠로 도약했다는 뜻이지만, ‘원조’의 입장에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3년이 흘렀다. 한국 태권도는 파리에서 당당하게 종주국의 위엄을 입증하고 있다. 8일(한국시간) 그랑 팔레에서 열린 남자 58㎏급에서 박태준(경희대)이 금메달을 딴 데 이어 9일 김유진이 여자 57㎏급 우승하며 이틀 연속 금을 캤다. 집 나갔던 금메달이 돌아온 셈이다.

하위 랭커 김유진이 만든 금메달이라 의미가 더 크다. 김유진은 세계태권도연맹(WT) 랭킹 24위에 자리한 선수다. 각 체급 세계랭킹 1~5위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한태권도연맹은 지난 1월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열고 여자 57㎏급 올림픽 출전권 확보에 도전하기로 했다. 2월 국내 선발전을 열었고, 김유진이 아시아 대륙별 선발전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3월 열린 선발전에 티켓을 따냈다.

랭킹은 낮지만 김유진은 강했다. 체급 ‘끝판왕’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16강에서 하티제 일귄(튀르키예·5위), 8강에서 스카일러 박(캐나다·4위)을 잡았고, 준결승에서 체급 내 최강자로 꼽히는 뤄쭝스(중국·1위)도 꺾었다. 결승 상대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도 2위의 수준급 선수다. 이들은 하나 같이 김유진 앞에서 무너졌다.

김유진은 “세계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 자신만 무너지지 말자고 생각했다”라면서 “오늘 몸을 푸는데 몸이 너무 좋았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혼자 속으로 ‘일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종주국의 대표 선수인 것만으로도 금메달을 획득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김유진이 증명했다.

도쿄의 아픔을 깨끗하게 씻은 한국 태권도는 금메달을 추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남자 80㎏급에 나서는 서건우가 10일, 여자 67kg초과급에 출전하는 이다빈이 11일 추가 메달에 도전한다.

김유진이 한국의 13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2008 베이징, 2012 런던올림픽과 함께 역대 최다 금메달 타이를 이뤘다. 태권도에서 14번째 금메달이 나온다면 한국 올림픽은 새로운 페이지를 열게 된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