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어둠은 짙어지고 바람은 세차게 분다. 사람들이 모이면 불을 들고 나아간다.”(안중근 내레이션)
‘하얼빈’은 어둠을 밝히는 로드무비다. 우리가 몰랐던 안중근을, 숱한 어려움에 부딪힌 독립투사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가 그렇다. 안중근이 이끄는 대한의군은 일본군과 전투에서 크게 이긴다. 안중근은 여기서 의외의 선택을 내린다. 전쟁포로를 살상하지 않는다는 ‘만국공법’에 기대 소좌 모리 다쓰오를 풀어준다. 군인 신분에 입각한 결정이었지만 이는 독립군 몰살로 이어진다. 목 없는 동지들 시체를 목도한 안중근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살아남은 이들의 비난 역시 드세다.
안중근은 절규했다. 자신의 선의가 너무 큰 아픔을 몰고 왔다. 통증은 화면으로 승화된다. 영화는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부터 폭설을 헤쳐가야 하는 안중근으로 심리를 대변한다. 후에 거친 만주 사막을 훑어서 고난의 길을 표현한다. 기존에 체험하지 못한 감동이 밀려온다.
한국영화 최초로 아이맥스(IMAX) 포맷으로 촬영한 ‘하얼빈’은 아리 알렉스 65 카메라로 전 시퀀스를 촬영한 덕분이다. 1.90:1 영상비로 구현된 장면은 2.35:1로 제작됐다. 세로 비율이 높아지면서 이전 작품보다 더 광활한 풍광을 펼쳐낸다.
기차 시퀀스에서 빛을 발한다. 좁고 긴 복도를 따라 수직으로 형성된 화면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맞물려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레일 위에 얹힌 열차는 좌우로 흔들린다. 관객들 심장을 조여오는 맛을 멋들어지게 살린다. 흰색, 갈색, 검은색 등 무채색 계열이 도드라지는 카메라 감도는 음울한 1909년 시대상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안중근을 따라가지만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클로즈업을 통해 내밀한 인간 심리를 엿보이게 했던 우민호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2015)이나 ‘남산의 부장들’(2020)과 확연히 다르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에 성공한 장면에서조차 누구의 얼굴도 비추지 않는다. 부감 쇼트로 멀찍이 소격해버린다. 영웅을 신격화해 흥행 소재로 쓰지 않겠단 의지다.
영화는 오락적 요소를 스스로 거둬들였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암살’(2015)이나 ‘밀정’(2016) 같은 쾌감을 주지 않는다. 실패하고 계속해서 고꾸라진다.
패배가 연속된다. 아프고 시린 역사다. ‘하얼빈’은 우직함으로 관객을 설득한다. 죽음이 다가와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죽은 자가, 살아있는 안중근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115년 전 바람 앞의 등불 앞에 나선 조선의 독립군과 국회 앞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서던 시민이 오버랩된 건 비단 우 감독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현빈이 빚어낸 안중근을 비롯해 조우진, 박정민, 전여빈, 유재명, 이동욱 등이 보여준 독립군의 모습은 2024년 겨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횃불과도 같은 뜨거움과 빛을 선사한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