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보석 같이 빛나는 조연이 작품을 더 환히 비출 때가 있다. 이야기의 화자가 아님에도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롤을 맡을 때가 있다. 주연만큼 빛나는 조연이다. 영화 ‘하얼빈’에서 조우진과 박정민이 그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이 그려내는 독립투사는 비장하고 결연한 안중근(현빈 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영화는 신아산 전투를 거쳐 만주에서 의병활동 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과정을 그린다. 단지동맹을 맺은 단지회 동지들로서 목숨 잃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군의 올곧은 신념을 짚는다.
안중근 못지 않게 훌륭한 독립군을 연기한 배우가 조우진과 박정민이다. 조우진은 김상현을, 박정민은 우덕순을 연기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차 역에서의 서사는 관객의 감정에 파동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하이라이트가 된다.
“애꿎은 사람 의심하지 마시오”
함경북도에서 만주로 이동하는 기차, 안중근과 우덕순, 김상현은 일본 순사에게 덜미를 붙잡혔다. 잡히면 모진 고문을 당하는 게 불 보듯 뻔한 상황. 안중근은 쉽게 도피했다. 다만, 김상현과 우덕순은 시간이 꽤 흘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김상현은 며칠, 우덕순은 몇 주나 늦었다.
이창섭(이동욱 분)은 우덕순을 의심했다. 우덕순이 기차를 잘못타 먼 길을 돌아왔다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덕순의 마음은 심하게 상했다. 그때 김상현이 나서서 하는 말이 “애꿎은 사람 의심하지 말라”다. 단호하고 칼 같은 말로 동료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영화 ‘내부자들’(2009)에서 ‘여썰고좌’라는 수식어를 얻은 조우진이 그린 독립군은 또 다른 느낌이다. 동료를 향한 깊은 신뢰를 무겁지 않은 톤으로 그려냈다. 독립을 위해 어떤 고난이 주어져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의감 깊은 인물,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역할임에도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고기를 꼭꼭 씹어먹는 장면은 오랫동안 회자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박한 얼굴 근육이 어딘가 더 인간적인 면을 끌어냈다.
“거 정말 독립이 될 것 같소?”
이창섭의 의심을 받은 우덕순은 김상현과 삐루 한 잔 먹으면서 속을 달랬다. 한참을 머뭇대다 건넨 말이 “정말 독립이 될 것 같냐”다. 독립이 실제로 이뤄질지 모르겠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차분하게 전했다. 그 순간 장르는 스릴러를 입게 됐다.
박정민은 극 중 우덕순의 능글능글한 면모를 낚아챘다. 시종일관 건들건들거렸다. 허허실실 웃고지내다가도 의견 대립이 붙으면 결코 밀리지 않는다. 남성성이 무섭게 솟구쳤다. 이는 후반부 부대 내 밀정의 존재를 알아챈 뒤 단호하게 “밀정은 죽여야죠”라고 말하는 대목과 연결된다. 그 어느 순간보다 비장하다.
두 배우가 만들어낸 앙상블이 ‘하얼빈’의 톤앤 매너가 된다. 고결한 안중근과 달리 두 사람의 얼굴에선 평범한 인간의 형상이 엿보인다. 그래서 독립군의 신념이 더 강렬하게 전달된다. 이야기의 화자는 안중근이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김상현과 우덕순이었다. 대한민국 독립이 영웅 서사가 아닌 국민 모두의 서사였던 것처럼. intellybeast@sportssoe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