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1992년 3월 대한당구원로회는 제8차 정기총회를 갖고 김상호 회장을 선출한다. 원로회는 서울 구로동 김영재 당구클럽에서 조직된 이후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차츰 참여 인원이 줄어들면서 결국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된다.


▶비당구인 출신 가입 막으면서 대한당구원로회 제자리 잡아


이를 지켜보던 한국당구위원회 김문장 회장이 한국당구에 원로회는 꼭 필요한 조직임을 강조하면서 재건에 나섰다. 하지만 많은 원로 당구인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 총회 때마다 성원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또 회원들을 늘리기 위해 비당구인들을 가입시키면서 당구원로회의 성격이 변질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통 당구인들은 당구원로회 가입을 꺼렸고 그 결과 초기에는 후배 선수들도 원로회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당구원로회 김상호 전 회장


하지만 이후 박병문 신항균 등 정통 당구인들이 가입을 하면서 원로회는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춰 나간다. 경기인 출신들이 현역에서 은퇴하면 자연스럽게 원로회에 가입했다. 또 비당구인의 가입을 막겠다고 밝힌 김명석 씨가 회장으로 추대 되면서 진정한 원로회로 자리 잡는다. 이후 김명석 회장의 연임이 끝나고 이어서 이흥식 씨가 회장으로 추대 되면서 원로회에는 많은 회원들의 가입이 이어졌다.


당구원로회는 매월 개최하던 정기평가전을 격월제로 바꾸고 한일원로당구대회를 해마다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현역에서 은퇴한 후배들이 제2의 당구인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갔다. 김철민, 백정기, 김윤석, 남도열, 강호산, 조창섭 등이 가입하면서 실질적인 종목단체 원로회로서 기능을 하게 된다. 60세 이상의 선수들이 은퇴와 함께 가입하면서 원로회의 경기력과 규모는 타 종목 부럽지 않은 환경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당구원로회 김명석 전 회장


▶무주공산 대한당구경기인협회 김영재 회장 다시 선출


대한당구경기인협회 김영재 회장은 1991서울월드컵당구대회의 후유증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시도 지부장들이 이를 수습하기 위해 지부장 회의를 소집, 임시 대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대구 지부장인 고창환 씨를 회장권한대행으로, 이병희 대전지부장을 사무총장으로 지명한다. 사무실을 역삼동으로 이전하고 고창환, 이병희, 홍상옥, 김종구 등이 협회의 주도 세력으로 떠오른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들은 1992년 6월 정기대의원 총회를 소집해 임원 선출안을 상정한다. 김영재 씨를 다시 제 2대 회장으로 선출해 협회의 정상화를 기대했다. 서울월드컵당구대회를 계기로 김영재 회장과 불편한 관계가 된 김문장 씨는 야인으로 물러나는 듯 했다.


92·93 한국당구최강전 30%대 시청률로 센세이션 불러 일으켜


하지만 김문장 씨는 물밑에서 큰일을 꾸미고 있었다. 한국당구연맹 가입이 거절됐지만 지켜만 보고 있을 김문장 씨가 아니었다. 1985년 대한당구회를 주도해 각종 대회를 추진하면서 많은 선수들이 김문장 회장 앞으로 줄을 선다. 김문장 회장은 많은 선수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강한 추진력과 행정력으로 한국당구 중심인물로 인정받게 된다.


김문장 회장은 91서울월드컵이 끝난 뒤 김영재 회장과 결별하고 재충전을 위해 경기도 오산으로 내려가 당구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다수 당구인들은 김문장 회장이 당구계를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가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1985년 김문장(왼쪽) 회장과 김영재 회장


오산으로 내려간 김문장 회장은 강석봉, 윤승록 등과 함께 한국당구최강전을 구상하며 한국당구의 대변화를 꾀했다. 1991년 SBS서울방송이 개국하자 방송국을 상대로 로비를 펼친다. 당시 SBS 스포츠국 최고 실무자인 김화진 PD와 당구 중계를 협의해 스포츠 국장인 정건일 씨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SBS한국당구최강전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1992년 당시 사회 분위기는 당구가 스포츠로 인정받기에 불충분한 환경이었는데 SBS는 위험부담을 안고 중계를 결정한 것이다.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당구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1992년 12월 한국당구최강전 멤버를 구성하면서 선발전을 허용하지 않았던 대한당구경기인협회는 한국당구최강전의 무용론을 내세우며 협상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이에 한국당구위원회 김문장 회장이 직접 나서 장성출, 김무순, 김정규, 이천우, 김효섭, 윤승록, 조수형, 김영하, 강문수, 조창섭, 고철수, 이상헌, 유재영, 김용석, 한익범, 강석봉 등 주로 서울과 경기권 선수들을 16강으로 지명하고 한국당구최강전에 출전하게 만든다.


한국당구최강전에 당구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려 반 기대 반으로 모든 당구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92․93한국당구최강전은 서울 삼풍백화점에서 성대하게 개막해 6차까지 진행되면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30%대를 넘나드는 기대 이상의 시청률에 SBS 정건일 국장은 흥분했고 요구하지도 않은 특별 보너스 500만 원을 내놓는 등 분위기가 뜨거웠다.


SBS 정건일(오른쪽) 국장과 장성출 선수.


반신반의하던 대다수 당구인들은 깜짝 놀랐다. 뛰어난 경기력을 지니고도 한국당구최강전에 참여하지 못한 선수들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그 화살은 당연히 대한당구경기인협회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92․93한국당구최강전이 마무리되고 93․94한국당구최강전을 준비하던 김문장 회장은 2차 선수선발전을 추진한다. 수많은 선수들이 참여하면서 혼란에 빠진 대한당구경기인협회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미 대세는 한국당구위원회로 넘어간 상태였다. 2차 선발전에서 신용순, 왕원길, 김성웅, 서광열, 임종화, 원영배, 이상열, 김석윤, 최문갑, 서인호, 홍순민 등이 선발되었고 이들 12명은 93․94한국당구최강전 고정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박태호 당구연맹 수석 부회장> news@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