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대한당구경기인협회는 방송을 업은 한국당구최강전의 돌풍이 이어지면서 선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방치하다가는 협회의 존재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까지 몰렸다.


▶대한당구경기인협회, 이명화 회장 영입하면서 대한당구선수협회로 개칭


92․93 한국당구최강전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을 대한당구경기인협회 임원들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당구최강전으로 불거진 어려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실무자였던 고창환 씨는 김영재 회장을 설득해 사임하게 한 뒤 한국당구의 거목인 박병문 씨를 찾아 간다. 당구계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박병문 씨는 이명화 씨를 회장으로 추대할 것을 제안하고 자신은 전무이사를 맡아 대한당구경기인협회의 새 집행부를 구성한다.


결국 이 일로 사회체육 전국당구연합회 구성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대한당구경기인협회에 다시 당구계의 힘이 실리게 된다. 대한당구경기인협회 이명화 신임 회장은 한국당구위원회에 강력 대응해 한국당구최강전도 가처분 신청을 통해 깔끔하게 정리 하겠다고 밝혔다.


박병문(왼쪽) 회장과 고창환 대구회장


▶한국당구위원회 정리하겠다던 이명화 회장 돌연 사퇴


이명화 회장의 발언 배경에는 모든 당구인들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명화 회장의 예상과 반대로 흘러갔다. 대세는 이미 한국당구최강전을 추진한 김문장 씨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판단한 이명화 회장은 돌연 사퇴를 선언한다. 입장이 난처해진 박병문 전무도 더 이상 협회에 있을 이유가 없어지면서 함께 사퇴를 한다.


▶대한당구선수협회김문장 회장 취임하며 한국당구 전권 장악


또다시 대한당구선수협회는 길을 잃어 버렸다. 한국당구위원회가 주최하는 한국당구최강전의 기세에 대한당구선수협회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당구선수협회는 결정을 내린다. 대전당구선수협회 회장이며 대한당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인 이병희 씨가 총대를 맨다. 밤늦은 시간에 김문장 회장의 신길동 자택을 찾아가 대한당구선수협회를 맡아줄 것을 제안한다. 이병희 회장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김문장 회장은 드디어 한국당구의 전권을 잡게 되었고 1993년 7월 대한당구선수협회 제4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김문장 회장은 대한당구선수협회와 한국당구위원회 두 단체의 수장이 되면서 한국당구 운용을 위한 구상에 들어간다. 많은 당구인들의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한 한국당구위원회는 대한당구선수협회와 통합을 하면서 순조롭게 운용될 수 있었다. 총 28명의 한국당구최강전 멤버를 구성한 한국당구위원회는 2차 시리즈에 돌입한다.


한국당구최강전에서 김문장(오른쪽) 회장과 장성출 선수


▶93·94한국당구최강전 김철민 강문수 한국 최고 스타선수로 각광


6차 대회로 기획된 한국당구최강전 2차 시리즈는 강문수 선수가 3차례 우승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대회를 통해 강문수 선수는 전국적인 인지도는 얻으며 존재감을 떨쳤다. 한국당구최강전 4차 대회에서는 김철민 선수가 우승을 한다. 김철민 선수는 KBF(한국당구연맹)에서 대한당구선수협회로 이적을 하면서 서울연맹에 이어 한국당구최강전 4차 대회도 우승을 차지한다. 오랜만에 체면을 세운 값진 우승이었다. 김철민은 한국당구의 독보적인 존재로 재조명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20대에 이미 전국적인 선수로 명성을 얻었던 김철민 선수는 예술구와 포켓당구, 3쿠션까지 우승권에 있었던 전천후 선수였다.


한국당구최강전에서 우승한 김철민 선수


SBS에서 방송된 한국당구최강전은 당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한국당구의 큰 변화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대한당구선수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던 김문장 회장은 한국당구최강전에 출전하지 못한 기존 선수들을 위한 대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한 추진력의 김문장 회장은 지방당구 활성화를 위해 전국투어 대회를 기획한다. 첫 대회는 엑스포가 열린 대전에서 열린 엑스포93 한국당구그랑프리대회였다. 대전 당구선수협회 이병희 회장이 운영하는 대전당구회관에서 예선전을 치르고 본선은 대전나사클럽에서 SBS의 녹화로 진행되었다, 오픈대회로 진행 할 것인지를 놓고 김문장 회장은 고민했지만 결국 2개의 대회를 선택해 선수협회와 프로위원회 선수로 명칭을 정하고 대회를 치른다.


▶선수협회 회장 취임후 대전·온양그랑프리 당구대회 개최


대전그랑프리 선수협회 대회에서 이동욱 선수가 길형주 선수를 따돌리고 우승한다. 프로위원회선수 대회에서는 한익범 선수가 이천우 선수를 누르고 우승하게 된다. 또 포켓9볼 경기에서는 박신영 선수가 이장수 선수를 꺾고 우승컵을 차지한다.


대전그랑프리에서 이장수 선수와 박신영 선수


온양호텔에서 열린 두 번째 대회 ‘온양그랑프리’도 대성황을 이뤘다. 이 대회 역시 이원화돼 개최됐다. 프로위원회 대회에서는 조수형 선수가 서인호 선수를 꺾고, 또 선수협회 대회에서는 김윤석 선수가 박종길 선수를 누르고 우승컵을 안았다.


선수협회 대회에서 우승한 김윤석 선수는 KBF(한국당구연맹)소속 선수로 활동하다 김철민 김석윤 등과 함께 선수협회로 이적한 의외의 선수였다. 실력은 있었지만 인지도가 떨어져 아무도 그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 했다. 이후 김윤석 선수는 전국적인 선수로 인지도를 높이며 각종 대회에서 입상과 우승을 하는 실력자로 인정받게 된다.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고 대한당구원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온양그랑프리 우승자 김윤석 선수


<박태호 당구연맹 수석 부회장> news@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