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상천은 한국당구의 대표선수로, 부산 정상철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함께 성장했다. 부산의 정상철은 대기만성 형으로 노력의 끝을 보여줬고, 이상천은 왼손잡이 특유의 감각으로 타고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이상천이 나타나면 ‘판’은 깨진다


1980년 초반 필자가 경영하던 무교동 당구장에서 이상천과 인연을 맺었다. 이상천은 필자도 압도될 만큼 카리스마가 강한 선수였다. 휜칠한 키에 상대를 끌어 들이는 흡입력. 설득력과 함께 기존 선수들보다 한 차원 높은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는 내기 당구가 유행이었는데 대다수 선수들이 이상천과 경기를 꺼렸다. 그가 나타나면 판이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당구의 독보적인 존재 이상천.


▶10여 명을 몰고 다닌 이상천


이상천은 10여 명의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어느 날 새벽 이상천이 무교동 스타 당구장에 나타났다. 당시 10여 명의 선수들이 내기 당구를 치고 있었는데 들어오자마자 그가 던진 첫 마디는 “야, 다들 돈 있는 대로 줘봐”였다. 어디서 게임을 하다가 돈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일명:물길러 왔다). 그런데 누구 한 사람 거절하지 않고 다들 있는 대로 돈을 거둬 주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내기 당구는 판이 깨졌다.


이런 일이 잦았는데 그럴 때마다 누구 한 명 그의 말을 거절 하거나 기분 나빠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후 들은 얘기로는 이상천은 누구에게 얼마를 가져갔는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반드시 몇 배로 돌려줬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이상천은 당구를 치고 싶어 했지만 대다수 선수들이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상대를 ‘옭아매’ 경기를 했는데, 비정상적인 핸디의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게임으로 수없이 패하기도 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서까지 당구가 치고 싶었던 이상천


1986년 경 한국당구의 경기력은 GA1.00대 안팎이 정상급 선수들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이상천은 1.3대의 경기력으로 한국당구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누구 한 사람 그에게 승부게임을 도전하지 않았다. 당구는 치고 싶은데 대다수의 선수들이 상대를 해주지 않자 이상천은 화가 났고 전략적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상대선수 입장을 의도적으로 헤아리지 않고 극단적인 말로 화나게 만들어 게임을 성사시켰으며, 상상을 초월한 핸디로 적지 않은 돈을 잃기도 했다.


▶86프로당구 선발전에 이상천 등 강남파 불참


1986년 김문장 씨가 조직한 대한당구회(임의조직)가 프로당구선수 선발전을 추진한다. 기존의 한국당구연맹 선수들은 이 선발전을 보이콧했고 이상천, 장성출, 이천우, 신재철, 박병문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도 참가하지 않았다.


1985년 문화체육관에서 펼쳐진 프로당구대회 모습.


문화체육관에서 펼쳐진 최종선발전에서 챔피언에 오른 K선수가 어느 날 우연히 무교동 스타당구장에서 이상천을 만났다. 이상천은 K선수를 보자 “어이, 챔프 내하고 승부 한 번 봐야지. 명색이 챔피언이잖아“라며 K선수를 도발해 기분을 상하게 했다. 하지만 K선수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훌(즉석경기 때 핸디용어) 잡아줄게“라며 다시 한번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상천의 '의도적인 도발’은 주로 여러 사람이 듣고 있는 절묘한 타이밍에 이뤄졌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원가락 3개 줄게”라며 거듭 상대를 자극해 게임을 이끌어낸다.


이렇게 시작된 승부 게임은 반드시 이상천의 승리로 끝났다. 당구는 멘탈 게임이다. 이상천은 경기 전 상대를 정신적으로 눌러 놓았고 기가 죽은 상대는 결국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하고 고개를 숙인다.


이상천의 수많은 경기를 봤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핸디에도 그가 이길 수 있었던 건 정신력 덕분이었다. 몇 시간을 헤매다가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결과를 뒤집는 승부사 기질을 타고난 것이었다.


▶신예 ‘똘이 장군’ 김정규에게 혼쭐난 이상천


어느 날 이상천이 전북 익산 출신 ‘똘이 장군’ 김정규와 만난다. 80년대 초 서울로 올라온 김정규는 숨은 고수였다. 전북 익산에서는 그를 이길 자가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연전연승 한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중원의 승부사'들이 김정규를 잡기 위해 도전을 했지만 연전연패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상천이 김정규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92․93한국당구최강전에서 김정규.


우연히 마주친 이상천에 대해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은 김정규 는 예의를 지키며 인사만 나누자고 생각했지만 이상천은 느닷없는 제안을 한다. “김 선수, 당구 잘 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즉석 한게임 어때?”. 김정규 역시 이상천과 경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지만 감히 먼저 제안하기는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우연히 이상천을 만나 경기 제안을 받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자 이상천은 “훌(즉석경기 용어)의 핸디를 잡아 줄테니 승부 한번 보자”며 다시 한 번 제안한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똘이 장군’이 아니었다. “그냥 다이다이 쳐유“라고 받아친다. 작은 체구에 당돌한 김정규의 말에 이상천이 오히려 당황했지만 결국 종로2가 모 당구장에서 승부게임을 하게 된다. 결과는 김정규가 4개를 이긴다.


김정규는 한국당구의 독보적인 존재 이상천에게 즉석경기에서 핸디 없이 이긴 유일한 선수였다. 그 후 이상천은 김정규의 배짱과 근성을 높이 샀고 남다른 인연을 이어간다.


멕시코 챔피언이 인정했던 김동수.


▶멕시코 챔피언을 무릎 꿇린 이상천


1986년 돈화문의 멕시코 대사관 옆 건물 지하 당구장에 멕시코 챔피언이 당구를 치고 있다는 소식이 퍼졌다. 멕시코 챔피언은 김동수와 경기를 하고 싶어 했다. 일본에서 열린 제42회 세계선수권대회 파견 선발전에 김동수가 한국 대표 선수로 출전하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일본선수들이 김동수의 경기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래서 김동수와 일전을 펼쳐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경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멕시코 챔피언의 방한에 한국의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와 경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30점 치기 1경기 당 2만 원의 금액을 걸어놓고 경기가 이어졌지만 누구 한 사람 그를 꺾지 못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상천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세 경기를 치렀다. 첫 대결에서 이상천은 일방적으로 패한다. 마음을 다잡은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접전 끝에 이상천이 이긴 뒤 마지막 경기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다. 역시 이상천이었다. 멕시코 챔피언은 그의 부인이 멕시코 대사관 직원이었기에 방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호 당구연맹 수석 부회장> news@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