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영재 회장은 한국당구의 큰 어른이었다. 항상 당구사업의 중심에 있었고 평생을 당구와 함께 했다. 당구와 인연을 맺기 전 김 회장은 한국전쟁 영웅이었다. 미군이 동해안을 통해 적진으로 진군하기 위해 한국군 선발대가 필요했는데 그 선발대가 김영재 회장이 소속된 소대였다. 한국군 선발대의 도움에 힘입어 미군은 북한군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후배들의 경기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김영재 회장.
▶한국전쟁 영웅이었던 김영재 회장, ‘철도 김’으로 더 알려져
김영재 회장이 당구를 접한 것은 오므라 항공병으로 징집되어 복무 할 때였다고 한다. 당구장에 다니는 대장을 몰래 따라갔다가 파란 천 위에 공들이 굴러다니는 게 김 회장에게는 무척 신기했다. 그는 당구장을 관리하는 여성(지금의 매니저)에게 당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사병은 당구를 칠 수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하지만 그냥 물러나지 않고 매일같이 당구장에 출근해 청소를 해주면서 당구를 배웠다고 한다.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던 김 회장은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광복 뒤 귀국해서도 당구장에서 세월을 보내다 방용하 씨를 만나 제자로 입문한다.
그 후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김 회장은 당구와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철도 김’이란 별명으로 많은 당구인들과 친분을 쌓았고 경기력 또한 발전을 거듭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방달성 씨가 제작한 당구대를 철도를 통해 전국 배송을 담당하기도 했다.
합리적인 성품과 강한 추진력의 김 회장은 한국당구의 리더로 인정을 받으며 오너로서 몇 차례 역할을 한다. 서울 고척동에 당구클럽을 운영하기도 한 그는 현 대한당구원로회의 전신인 한국당구원로회 조직에도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등 평생을 당구와 함께한 진정한 당구인이다.
▶양귀문·김문장 좌청룡 우백호로 두고 진두지휘
1980년 중반부터는 한국당구의 전설들인 양귀문 씨와 김문장 씨를 좌청룡 우백호로 두고 다양한 당구사업을 펼쳤다. 1985년에는 대한당구회가 추진하는 프로당구 사업에 합류, 중책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쳐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김영재 회장의 당구사랑과 업무능력에 매료된 많은 당구인들이 한국당구 조직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국적인 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그 결과 1990년 9월24일 임의 조직인 대한당구경기인협회가 구성되었다. 실질적인 전국조직인 대한당구경기인협회 창립식이 한국일보 대강당에서 열렸고 김영재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추대된다.
김 회장은 취임 후 첫 사업으로 1991년 6월 88체육관에서 전국당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한다. 전국에서 400여 명의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출전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국제식과 국내식으로 나누어 벌어진 전국당구선수권대회는 장성출 선수가 국제식 3쿠션 부분에서, 국내식 3쿠션에서는 최문갑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88체육관에서 벌어진 전국당구대회.
▶월드컵 3쿠션 당구대회 한국유치 선언
김영재 회장은 일본에서 개최된 월드컵3쿠션 당구대회에 초청을 받는다. 경기장 분위기에 들떤 김 회장은 한국에서 월드컵당구대회를 개최하고 싶어했다. 당시 월드멤버로 활동하고 있던 이상천의 경기를 보면서 고무되기도 했다. 이상천은 김 회장에게 자신이 도울테니 월드컵 3쿠션 당구대회를 한국에서도 한번 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한다. 이에 힘을 얻은 김 회장은 축사에서 한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발표를 해버린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회장은 사무총장에 김문장 씨를 선임하고 월드컵 당구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한다. 가장 급한 일은 재원 확보였다. 당구는 지금과 같이 제도권에 진입한 종목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종목도 아니었다. 기업이 투자할 분위기도 아니어서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고심하던 김영재 회장과 집행부는 당구용품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당구대 제조사이면서 경제력이 있던 유성 캉가루 현두경 회장이었다. 유성 캉가루가 만드는 당구대를 91서울월드컵 공식당구대로 선정할 것을 약속하고 당구대 6대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일정금액의 협찬금 약속 받는다. 당구대 라사까지 유성라사지로 세팅하기로 했지만 선수금만 받고 일부금액은 받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한당구협회 회장에게도 공동 대회장을 제안하며 일정금액의 협찬금을 부탁했지만 이 또한 없던 일이 되면서 91서울 월드컵 당구대회는 재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영재 회장이 개인 부채를 떠안게 되고, 이 일로 인해 김 회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91서울월드컵 3쿠션 당구대회 개최후 경제적 고충 심화
당시 월드컵당구대회는 연간 5차례에서 7차례에 걸쳐 세계를 투어하면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사업이었다. BWA(세계프로당구협회)가 주최하는 대회로 총예산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규모였다. 세계랭커들에게 초청비를 지급한다는 항목이 포함되면서 예산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임의 조직체였던 대한당구경기인협회가 월드컵당구대회를 유치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였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김영재 회장은 이 대회 뒤 한평생 불편한 삶을 살게 된다.
1991년 12월 11일 22개국에서 137명의 선수가 출전한 서울월드컵 당구대회가 삼풍 백화점에서 개최 되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월드컵당구대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SBS 서울방송의 개국과 함께 중계된 월드컵당구대회는 전 당구인들을 설레게 만들었고 당구의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그 때까지 일본 당구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한국 당구는 이 대회를 통해 유럽당구에 눈을 뜨면서 한국선수들의 경기력은 엄청난 발전을 한다.
1985년 당구인의 밤에서 김영재 회장.
▶제2대 대한스포츠당구협회회장으로 취임
김영재 회장은 한국당구를 대한체육회에 가맹시키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펼쳤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포켓당구 활성화를 위해 포켓연맹체를 별도의 조직체로 승인해 주었고 APBU부회장을 역임하면서 APPU(아시아포켓당구연맹) 투영휘 회장과 친분을 쌓으면서 박신영 정영화 등 유망한 포켓선수들을 대만으로 유학을 보내는 등 한국포켓당구활성화를 위해 앞장섰다.
1998년 1월 당구종목이 대한체육회 인정가맹이 되면서 많은 당구인들은 환호했다. 가맹을 추진했던 임영렬 씨가 초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회장이 되었으나 반 임영렬 인사들에 밀려 사임하면서 한국당구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비록 인정가맹이지만 제도권에 진입한 당구종목은 유력인사 영입을 기대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무주공산이 되었고 이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던 전국대의원들이 수습에 나섰다. 제 2대 회장선거에 김영재 씨와 김문장 씨가 출마해 8대3이란 일방적 결과로 김영재 회장이 당선된다.
▶유태성 회장 영입하면서 회장 자리 양보
한국당구 최대의 혼란기에 대한당구연맹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김영재 회장은 조직을 수습하는 한편, 당구를 대한체육회 준가맹단체로 가맹시키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2부산아시안게임 종목에 당구가 채택되게 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재 회장은 ‘좋은 사람이 들어오면 언제든 자리를 비워 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당구장 시설사업을 하는 이영재 씨가 양귀문 회장을 통해 신원그룹 유태성 씨를 대한스포츠당구협회 회장으로 추천한다. 당시 당구인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경제력을 갖춘 인사를 회장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중견기업가인 유태성 씨 정도면 당구인들이 반대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대다수 당구인들이 유태성 씨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김영재 회장은 자신이 회장을 하면서 지출된 재원만 보전해 준다면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제3대 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최악의 협회로 전락한다.
그 후 2005년 제5대 민영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김영재 회장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당시 전무이사였던 필자는 김 회장의 사연을 민영길 회장에게 알렸고 도울 방안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 당구인들을 대상으로 모금 사업을 펼쳐 도움을 드렸으면 한다는 제안을 하지만 김 회장은 이를 단번에 거절한다. 그는 신임회장 영입 시 약속한 대의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이었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자존감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김영재 회장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당구대회장에 빠짐없이 참석해 후배 선수들을 격려해 주었다. 진정으로 당구를 사랑한 김 회장의 인생은 당구로 시작해 당구로 끝난, 영원한 당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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