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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인 8일 서울 명동 YWCA에서 YWCA회원들이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장미꽃을 헌화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스포츠서울 최신혜기자] 의료계에서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가 시작됐다. 대형병원인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소속 의사들이 첫 타자로 지목됐다. 다국적제약사인 한국얀센도 한 여직원의 성폭력 경험 폭로로 구설에 올랐다.

◇“아산병원 의사, 인턴 성폭행 시도” 제보

지난 7일 동아일보는 1999년 서울아산병원 A 교수가 인턴을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하려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시 병원 인턴으로 일했던 B씨는 그해 3월5일 회식 후 “여러 교수가 참석한 술자리에서 내가 술에 취하자 A 교수가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택시를 탔다. 이어 근처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제보했다. 깜짝 놀란 B씨가 A 교수를 발로 차며 완강히 거부했고, A 교수는 두세 차례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방을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A 교수는 “택시에서 내린 B씨가 구토를 하고 몸을 가누지 못해 가까운 호텔에 방을 잡아 데려다줬을 뿐”이라며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씨에 따르면 A 교수는 사건 이후에도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성희롱 등을 일삼았다.

B씨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생, 인턴을 마친 뒤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 현재 미국에서 의사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 교수 12명 동료 교수 고발해

8일 서울대병원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12명이 동료 교수의 성폭력 여부를 조사해달라며 나서는 이례적인 ‘미투’ 폭로가 일어났다. 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교실 기획인사위원회 소속 교수 12명은 ‘동료 C 교수가 그동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 병원 직원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부적절한 성적행위를 하고,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과도하게 처방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C 교수는 2013년 10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워크숍에서 여러명의 간호사들이 있는 가운데 장시간에 걸쳐 성희롱이 담긴 언행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C 교수의 성희롱 대상이 된 한 간호사는 이날 충격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결국 사직했다.

동료 교수들은 지난 2014년에는 C 교수가 연구원, 간호사, 전공의, 임상강사 등 여러 직종의 여성을 대상으로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지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투서가 대학본부 내 인권센터에 접수돼 조사가 이뤄졌지만, 이 또한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적절히 관리돼야 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만성통증 환자에게 과도하게 처방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C 교수는 동료 교수들의 주장이 음해에 불과하다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본지 확인 결과 C 교수는 논란 발생 후에도 병원에 출근해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 등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정신과에서 오늘 언론을 통해 밝힌 보고서는 병원에는 접수된 바 없다”며 “정신과에서 병원에 요청한 것은 마약성진통제 과다처방과 근태사항 두가지에 대한 조치”라고 말했다. 마약 문제의 경우 병원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통해 지난해 말부터 논의를 이어왔고 앞으로도 세밀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는 의대와 대학본부에서 사건 당시 조사를 했지만 조사 중 피해 당사자가 원치않아 중단했다고 말했다. 기타 직원들에 대해 성희롱 등이 있었는지 여부는 대학과 연계해 조속히 조사할 방침이다.

◇제약사도 ‘미투’ 폭로 시작…한국얀센 첫 타자

8일 다국적제약사 한국얀센에서도 미투 폭로가 이어졌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국얀센의 한 여직원은 7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떠나며 전 직원에 메일을 보내 그동안 겪었던 직간접적인 성폭력 및 언어폭력을 낱낱이 공개했다. 메일에는 평소에는 점잖다가도 술만 마시면 부적절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회사 밖의 의사들이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함부로 하는 사내 선배들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여자 직원에게 점수를 매기거나 모 회사 여직원과 교수의 확인되지 않은 추문을 늘어놓는 선배와 옆에 앉아 기대고 허벅지를 만졌다는 상급자의 사례 등이 담겼다.

한국얀센 관계자는 “어떤 종류의 괴롭힘도 사규 위반이므로 회사는 이번 일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며 “내용이 사실일 경우 강력한 규정을 통해 징계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의료·제약업계 관계자는 “미투 열풍이 확산되는 것을 보고 의료·제약계 역시 이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숨겨진 성추행 등의 사건이 어마어마해 두 발을 편히 뻗고 자지 못하는 의료인들이 꽤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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