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정 [포토]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최근 KBS 신관 내에 식당을 겸한 다목적 공간인 ‘KBS 쿠킹스튜디오’를 만든 KBS 이욱정PD의 행보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1994년 KBS 프로듀서로 입사해 예능과 사극 프로듀싱도 맡았지만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10년전부터는 요리·음식 관련 교양 프로그램이란 한길을 걷는 중이다. 이때부터 자신의 이름 ‘이욱정’ 세글자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요리인류’ 브랜드를 꾸준히 알려왔다.

이에 대해 이PD는 “‘요리인류’라는 브랜드를 10년간 축적해 오고 있는데 한국 방송에서, 그것도 교양 다큐 분야에서 이렇게 한 브랜드로 경험을 축적해 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잘 이어온 거 같다”고 말했다.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는 방송국 내에서도 관심을 두는 장르가 아니다. 이PD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이 분야에서 KBS라는 브랜드를 달고 꾸준히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그가 직접 제작비 투자유치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그가 이끌어낸 외부 투자 금액만 총 64억원에 이른다. 그가 만든 ‘요리인류’ 다큐멘터리 시리즈나 각종 요리·음식 프로그램은 모두 외부 제작지원으로 이뤄졌다.

이 PD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제작비를 유치하는 게 더 어렵다”며 “후배PD들도 내게 왜 힘든 길을 가냐고 가끔 묻는다. 내가 외부 투자를 받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러더라. 그러나 내가 제작하고 싶은 컨텐츠를 위해 기업과 정부단체를 찾아다니며 읍소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과정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KBS, 공영방송의 상황도 그리 여유로운 편은 아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의 수익성 등을 고려해 보면 스스로 제작비를 마련하는 방식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남이 안가는 힘든 길을 가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PD는 KBS에 휴직을 내고, 사비로 2년간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에서 유학을 할 정도로 요리·음식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10년전부터 그가 ‘요리인류’란 브랜드로 만든 ‘누들로드‘ , ‘요리인류 키친’ 등의 콘텐츠에 그의 외골수적인 행보가 고스란히 읽힌다. 그는 “나는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은 힘든지 모르고 하는데 하기 싫은 일은 참 못하는 유형이다. 먹는 것, 요리하는 것.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걸 좋아해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전개중인 ‘요리인류‘ 브랜드에 대해서는 “‘요리 하는 인류’라는 말인데 나는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능력이 요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요리라는 창을 통해 인류의 궤적, 역사가 나아갈 바를 보고 싶다. 그래서 거창하게 ‘요리인류’라는 타이틀을 붙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엔 배달앱에 기반한 푸드테크 서비스 기업인 ‘배달의 민족’에서 제작지원을 받아 극장판 다큐멘터리인 ‘치킨인류’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곧 반찬에 대한 다큐, 햄버거 업체의 제작지원을 받는 햄버거 관련 다큐도 제작할 예정인데 TV라는 플랫폼에서 벗어나 웹다큐 형식으로 깊이감을 더할 예정이다. 국내 유명 세프들을 다루는 ‘더굿셰프’ 시리즈를 제작 중인데, 좋은 식재료 생산자를 다루는 ‘더굿파머’ 시리즈로 연결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이PD가 교양·시사의 영역에서 풀고 있는 음식·요리 분야는 최근 예능의 핵심 컨텐츠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PD는 “우리 사회,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이 필요하고, 모두 힘들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혼밥 문화’도 먹방·요리 콘텐츠의 인기와 무관치 않다고 해석했다. “인간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현대인은 이런 경험 자체와 멀어지고 있다. 친구나 가족과 먹지 않고 혼자 먹는다. TV와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인터넷이나 TV로 ‘먹방’을 본다. 내가 먹으며 그 사람이 먹는 걸 보는 것이다. 비난할 문제는 아니고 우리가 참 외롭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리·음식 자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늘었다. 시작은 ‘예능’이지만 문화로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음식 다큐멘터리 등 깊이 있는 요리 프로그램들도 많이 나와야 한다. 음식·요리 콘텐츠가 다양화·다변화되는 건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음식·요리 컨텐츠가 한때의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먹방·요리 콘텐츠의 대세인 방송인 겸 사업가 백종원에 대해 이 PD는 어떻게 생각할까. “긍정적으로 본다. 각자의 영역이 있는데 나는 음식 다큐를 통해 인문학적으로, 영상미학적으로 뭔가 깊이 성찰하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음식·요리 콘텐츠에서 내가 하는 접근의 비중은 높지 않다.(웃음) 예능 분야에서 백종원은 음식, 요리하는 사람에 대한 대중의 친밀감을 높여 놓았다. 불과 십수년전만 해도 요리하는 사람이 천대 받았는데, 요리나 음식 관련 분야에서 인기인이 나온다는 건 좋다”고 말했다.

이 PD는 “백종원이 골목상권의 요리사, 식당 주인을 컨설팅해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긍정적인 시도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전체 시장이 넓어지는 효과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백종원 대표를 내가 지금 운영중인 ‘KBS 쿠킹스튜디오’에 모셔 식당 컨설팅을 받고 싶다.(웃음) 장사엔 초보라 어려움이 많다. 그의 조언을 듣고 싶다.(웃음)”고 말했다.

한편 이PD는 최근 KBS 신관 내에 식당을 겸한 다목적 공간인 ‘KBS 쿠킹스튜디오’를 열었다. 이에 대해 이PD는 “지난 2017년 사내 벤처를 도입하는 공모에 응모해 1위를 차지한 프로젝트다. ‘주식회사 KBS요리인류’는 기존 사내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제작팀이 만든 특수목적법으로 KBS가 100% 투자한 회사”라며 “내가 공모 때 낸 제안은 ‘씨어터 키친’ 즉 ‘극장 같은 주방’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식당이면서 촬영장인 곳,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다목적 식문화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취지”라고 소개했다. 12월 1일 정식 오픈 전에 프리오픈 기간을 갖고 있는 이곳은 점심엔 일반 식당처럼 운영되고 있고, 저녁엔 ‘치맥데이’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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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쿠킹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이욱정PD.

사진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