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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제공 | 한진그룹

[스포츠서울 이선율기자]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8일(현지시간) 새벽 0시 16분 미국 LA의 한 병원에서 향년 7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 미국 LA에서 폐질환 수술을 받은 뒤 뉴포트비치 별장에 머물면서 치료에 집중해왔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인 이명희씨와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차녀 조현민씨 등 가족들은 조 회장의 병세 악화에 최근 미국으로 건너가 임종을 지켰다.

이날은 조 회장 사건의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지난해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와 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면서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중개수수료를 챙기고, 자녀인 조현아·원태·현민씨가 보유하던 주식을 계열사에 비싸게 팔아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불구속기소 된 상태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이 별세함에 따라 관련 재판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오는 9일에는 부인 이명희씨와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로 형사재판이 예정돼있지만 이 역시 장례 일정 등을 이유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지난 1949년 인천에서 대한항공 창업자인 고 조중훈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1975년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 학사를 거쳐 1979년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후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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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큰 공로는 45년여의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첫발을 들인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였다. 1978년부터 1980년에도 2차 오일쇼크로 항공업계가 연료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조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줄일 수 있는 원가는 줄이되,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여 불황에 호황을 대비하는 선택을 했고, 이 덕분에 오일쇼크 이후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도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 보잉737NG 주력 모델인 보잉 737-800 및 보잉 737-900 기종 27대 구매 계약 체결한 점도 계약금 축소에 보탬이 됐다.

또 저비용 항공사(LCC)의 성장세에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했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하며 수익 구조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외부적으로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항공산업의 주요 한 축으로서 입지를 공고히해왔지만 내부적으로는 한진해운 부실 경영, 오너 리스크 등 문제가 터지는 등 각종 풍파를 겪으며 휘청이기 시작했다.

[사진1] 2018 임원세미나

조 회장에게 있어 가장 아픔이 컸던 사건 중 하나는 한진해운 청산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과도한 용선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 2014년에는 한진해운 회장직을 역임,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했지만 결국 법정관리 수순을 밟으면서 2017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너 일가 인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2014년에는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직원에게 갑질을 해 문제를 일으키고 항공기 회항을 지시한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조 회장이 직접 사과까지 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이후 부인 이명희씨 등까지 폭행 및 폭언 등 논란에 연루돼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조 회장도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서울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지난달에는 주주들의 결정에 의해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직을 내려놓게 됐다.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그가 항공산업에서 45년간 일궈온 공로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별세 소식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조 회장에 대해 “한국 항공·물류산업의 선구자이자 재계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조 회장의 별세는 재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면서 “그는 지난 45년간 변화와 혁신을 통해 황무지에 불과하던 항공·물류산업을 일으켜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 덕분에 우리나라는 우수한 항공·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역동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으며 세계 무역 규모 6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melod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