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014년 7월31일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총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임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대한항공은 2년 전 보잉이나 에어버스가 아닌 캐나다산 봄바디어 비행기를 인수해서 국내선에 투입하고 있다. 주문은 2011년 이뤄졌는데 당시 업계에선 봄바디어와의 계약이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동계스포츠 강국인 캐나다의 표심을 잡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올림픽 유치 3수에 나선 한국은 2018년 대회 개최를 위해 독일 뮌헨과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유치위원장 대업을 맡은 조 회장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총력전을 펼친 셈이다. 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한국은 뮌헨과 안시(프랑스)를 압도적으로 제치며 1차 투표에서 개최에 필요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8일 갑자기 별세한 조 회장은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배구와 탁구를 중심으로 국내 체육계 현안에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두 종목 실업팀을 그룹 산하에 두며 스포츠에 애정을 드러낸 조 회장은 2008년 7월 대한탁구협회장에 선임되면서 체육 행정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이어 이듬 해엔 두 번이나 실패한 평창 올림픽 유치를 이루기 위해선 기업가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당시 정부 판단에 따라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와 2018년 평창 올림픽 유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0년 6월 김 전 지사가 퇴임하면서 유치위 단독 위원장이 된 조 회장은 그룹 일을 제쳐둔채 평창에 ‘올인’했다. 이 때 34차례나 출국하며 전세계를 50만㎞ 넘게 돌아다녔다.

이후 그룹으로 돌아간 조 회장은 평창 올림픽 초대 조직위원장에 올랐던 김 전 지사가 낙마하자 2014년 7월 2대 위원장을 맡아 ‘운명’처럼 평창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슬라이딩센터 등을 놓고 불거진 한·일 공동개최론을 정면 돌파한 것은 물론 조직위에 한진그룹 인사들을 대거 파견해 올림픽 준비 작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조 회장은 개막식을 불과 1년 9개월 앞둔 2016년 5월 전격 사퇴하는 충격을 던졌다. 사퇴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 많은 궁금증을 낳았는데 결국 그 해 10월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조 회장의 조직위 하차 전말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동계올림픽 이권 개입을 추진하던 최순실 측이 자신들의 계획에 반대하던 조 회장을 끌어내린 것이다. 남·북 화해의 가교가 된 평창 올림픽 유치 및 개최에 조 회장 기여는 이토록 컸다. 하지만 그는 평창 올림픽 성공 개최 순간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 회장은 탁구와도 인연이 깊다. 별세할 때까지 대한탁구협회장을 지내면서 한국 탁구가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많은 애를 썼다. 특히 부임 당시 파벌 싸움이 심했던 탁구계를 하나로 모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스웨덴 할름스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선 국제탁구연맹(ITTF)과 공조를 통해 여자 단일팀 결성을 이뤄냈다. 또 탁구인들의 숙원인 2020년 부산 세계선수권(단체전) 유치에도 성공했다. 12년간 100억원 가까운 지원금도 쾌척했다.

배구와 빙상에도 조 회장의 발자취가 뚜렷하다. 대한항공 배구단은 지난 시즌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 2016~2017시즌과 2018~2019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내며 명문 구단 기틀을 다졌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2년 전부터 한국배구연맹 총재에 올라 아버지의 체육 사랑을 물려받았다. 대한항공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획득해 한국 동계 종목 쾌거를 이룬 모태범과 이승훈을 스카우트했다. 둘은 밴쿠버 올림픽 이후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세계선수권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며 한국 체육을 빛냈다.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