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90% 이상 정신적·육체적 피로감 호소…폭언·폭행은 덤대전협 ”열악한 근무환경과 살인적인 노동 강도 여전히 심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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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출처|서울신문

[스포츠서울 양미정 기자] 우리나라에서 군대만큼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수련 문화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 있다. 바로 24시간 365일 피 튀기며 치열하게 돌아가는 병원이다.

실수 하나가 의료 사고로 귀결될 수 있는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는 의국. 그곳에선 그들만의 규칙과 위계질서가 ‘수련’이라는 명목 하에 폭언과 폭력으로 되풀이된다. 이런 이유로 의료 최전선에서 환자를 돌보는 전공의들이 열악한 근무환경과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호소하며 수련을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13년 정형외과 레지던트 1년 차였던 A씨는 ‘이렇게 살 순 없다’며 사표를 던진 뒤 군에 도망치듯 입대했다. 교수의 폭언·폭행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였다. 그는 ”병원마다 편차가 있지만 외과(일반외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계열에는 여전히 폭력이 남아있다“며 ”언론을 통해 몇몇 사건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분위기라지만 아직도 폭행을 일삼는 교수가 적잖다“고 폭로했다.

2015년 산부인과 레지던트 2년 차였던 B씨는 “2년 반만 더 참으면 전공의가 될 수 있었는데 우울증에 걸려 중도 포기한 뒤 군대에 갔다”고 고백했다. 안 그래도 비인기과다 보니 전공의 미달로 인해 혼자서 2~3명 분의 일거리를 소화해야 했는데, 교수의 갑질로 인해 인간으로서 삶을 포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는 현재 일반의로 서울의 한 의원에서 피부미용 시술을 하며 살고 있다.

2017년 정형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한 C씨는 “차라리 수술과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노예같은 생활을 해도 버틸 수 있다“며 ”하지만 교수들이 의료사고를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수련이 아닌 개인 업무를 떠밀었다. 의미없는 생활이 반복돼 1년도 채 안 돼 그만뒀다. 차라리 군의관을 하면서 배운 것이 훨씬 많았다”고 털어놨다.

최근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D교수가 2015년부터 전공의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사건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며 병원 내에서 관행처럼 이어지던 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양대병원 성형외과 E교수는 2014년 전공의 폭행 문제로 인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고 이후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퇴직 처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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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제공|서울신문

이에 대해 대한전공의협회(이하 대전협) 측은 전공의 폭행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여전히 폭행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발표된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에 따르면 전공의 25.2%가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법이 잘 또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응답했으며, 이 수치는 근무환경에 불만족하다고 응답한 25.48%와 거의 일치했다.

전공의의 30%는 최대 연속 수련시간인 36시간을 초과한 경험이 있으며, 최근 6개월간 당직 근무를 했음에도 당직비를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60% 이상은 오프(쉬는 날)에도 근무를 지속해야 했다. 의료행위 수행 시 교수나 전임의의 적절한 지도·감독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답한 비율도 37%에 달했다. 전공의들이 ‘폭행, 살인적인 근무 강도, 급여 미지급’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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