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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서 정의철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글·사진 이주상기자] 1/1000초 차이로 예선 2위. 간발 아니 찰나의 차이로 패배한 것을 되갚기 위해 결선에서는 스타트부터 선두로 치달았다. 1랩부터 16랩까지 정의철(32·엑스타 레이싱) 앞에는 어떤 차량도 보이지 않았지만 17랩에서 후미에 있던 장현진(서한 GP)이 눈 깜짝할 사이에 치고 나오며 첫 번째로 체커기를 받았다. 정의철은 2.679초 차이로 예선에 이어 또다시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정의철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나보다 장현진 선수의 페이스가 좋았다. 막을 수 없는 스피드의 차이였다. 팀원들에게 미안할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하며 오는 9월 1일 열리는 6라운드를 기약했다.

지난 4일 전남 영암군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2019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5라운드가 열렸다. 슈퍼레이스 최상위 코스인 ASA 6000 클래스에서 정의철은 2위로 올해 처음 포디움에 올랐다.

정의철은 서킷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영재’ 레이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카트 선수로 처음 트랙을 질주했고,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한국 모터스포츠 사상 최연소로 프로 레이서 자격증을 따냈다. 지난 2016년에는 슈퍼레이스 시즌 챔피언에 올라 최고 레이서로 등극했다. 정의철은 “9라운드까지 아직 4라운드가 남았다. 5라운드까지 매 라운드마다 우승자가 달랐다. 올해만큼 치열한 레이스를 벌인 적이 없다”며 “최종 목표가 ‘우승’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은 분명하다”며 굳게 말했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자신의 차량을 수리하느라 여념이 없는 정의철을 그의 차고가 있는 용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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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철.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2016년 시즌 챔피언을 차지한 이후 우승이 없다

ASA 6000 클래스가 워낙 치열해서 시즌 챔피언을 두 번 이상 차지한 선수가 아직 없을 정도다. 라운드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분명히 또 다른 기회가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 섭씨 35도를 웃돌아 레이스에 악영향을 미쳤을 텐데

차량 실내온도는 70도 이상이다. 속도를 올리기 위해 에어컨이 없는 데다, 엔진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엄청 뜨겁다.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은 상황이다.

- 그래도 더위를 이기는 전략이 있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경기 전날부터 물을 많이 먹어 불필요한 염분을 빼거나 쿨 셔츠를 입는 정도다. 체력과 정신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 체력과 정신적인 부분이란

레이서는 마라톤 선수처럼 강인한 지구력이 필요하다. 달리기 등 틈날 때마다 운동한다. 레이스 중 선수들의 심박 수는 최대 190까지 올라간다. 일반인의 평균 심박 수가 50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인데, 체력과 정신력이 수반돼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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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철.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1/1000초 차이로 예선에서 2위를 했다. 결선에서 가장 빠르게 스타트를 끓었는데

스타트는 앞차와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간이다. 스타트에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앞차와의 간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장현진보다 앞서 스타트를 끓었지만 말미에 추격을 당했다.

- 16랩까지 1위를 달리다 두 바퀴를 남겨 놓고 역전당했다.

레이스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나를 비롯해서 미캐닉 등 누구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1위를 한 장현진이 잘 달렸을 뿐이다.

- 금호타이어를 장착하고 2위의 성적을 냈다. 주변에서 타이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레이스에서 타이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다. 그만큼 타이어가 중요하다. 노면과 가장 가까이 접촉하는 부분이 타이어다. 노면을 얼마나 움켜쥐고 가느냐가 관건인데, 이번에 장착한 타이어는 그동안의 단점을 보완해 만든 타이어다.

- 어떤 단점을 보완했나

그것은 기밀중의 기밀이다.(웃음)

- 레이스에서 사용하는 타이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연구원들과 드라이버가 협력해서 만든다. 선수들의 ‘감성평가’와 연구원들의 ‘계측평가’를 통해 만들어 진다. 감성평가는 드라이버가 레이스에서 경험한 것을 연구원들에게 피드백하며 이루어지고, 연구원들은 감성평가를 토대로 각종 장비를 통해 수치를 내며 계측평가를 한다. 두 가지 평가를 통해 개발한다.

- 레이싱에 매료된 계기는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카트장이 생겨 부모님의 권유로 하게 됐다. 처음엔 놀이로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레이서까지 하게 됐다. 자동차 디자이너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레이서가 되기 위해 그런 것 같다.(웃음)

- 슈퍼레이스는 언제부터 참가했나

2003년부터 참가했다. 최고 성적은 2016년에 차지한 시즌 챔피언이다. 그해 대한 자동차 경주협회로부터 ‘올해의 드라이버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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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철.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레이서로서 일반인들의 차에 대한 애티튜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는 운전면허 취득과정이 짧고 간단한 편이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과정을 중요시 하지 않는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운전을 쉽게 생각한다. 면허 취득 과정을 통해 운전의 어려움이나 위험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한 면이 있다.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드라이빙 스쿨에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개인이 갖고 있는 차는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를 갖고 있다. 편하고 경제적인 차다. 모터로 운행하기 때문에 굉장히 조용해서 스트레스가 적다.

- 사회 초년병들에게 권하고 싶은 차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회 초년병들에게는 레이나 아반떼를 권하고 싶다. 크기에 비해 실내가 넓고, 가성비도 높아 처음 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좋다.

- 롤모델이 있다면

같은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데 유지다. 이데 유지는 일본 최고 레이서인데다, 세계 최고의 대회인 F1(포뮬러1)에서도 뛴 톱 드라이버다. 기술은 물론 경험적인 면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45살이지만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뛰어나다. 그 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가 없다. 이데 유지는 항상 성과를 내는 선수다. 예선보다 결선 성적이 항상 좋다. 그것은 작전능력이 좋다는 말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다. 옆에 있기 때문에 더욱 배우고 싶어지는 선수다.

- 나에게 레이싱이란

내 인생의 전부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군 입대 외에 한해도 쉬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레이싱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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