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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고 구자경 명예회장(왼쪽)과 고 구본무 LG회장이 생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제공|LG그룹

[스포츠서울 이선율기자]LG그룹 2대 회장이자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던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다.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45세 때인 1970년부터 LG그룹 2대 회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해 부산 사범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50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앞서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의 별세로 구 명예회장은 1970년 LG그룹 2대 회장을 맡아 25년간 그룹 총수를 지냈다. 1987∼1989년 사이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창업초기부터 회사 운영을 진두지휘해온 구 명예회장은 안정과 내실을 중시하는 경영스타일로, 그룹 재건에 힘써왔다.

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끈 25년 동안 LG그룹 매출은 연평균 50% 이상 성장하는 등 내실 있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특히 대기업의 부침이 심했던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도 특혜나 이권과 관련해 잡음이 없어 신뢰도 역시 높은 편이었다.

그가 1970년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룹은 럭키와 금성사, 호남정유 등 8개사에 연간 매출이 270억원이었다. 취임 이후에는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 때 범한해상화재보험과 국제증권, 부산투자금융, 한국중공업 군포공장, 한국광업제련 등을 인수했다. 이후에도 럭키석유화학(1978년), 금성반도체(1979년), 금성일렉트론(1989년) 등을 설립하는 등 외형을 키웠다.

또한 LG그룹은 전자와 화학뿐 아니라 부품소재, IT(정보기술)로 사업 영역을 넓혀 성장의 기틀을 닦았고, 이후 1995년에는 장남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고인이 경영에서 물러날 당시 LG는 30여개 계열사에 매출액 38조원의 재계 3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구 명예회장은 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자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 확보에 주력해 회장 재임 기간에 설립한 국내외 연구소만 70여개에 이른다.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동유럽, 미주 지역에 LG전자와 LG화학의 해외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특히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된 경영체제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의 원칙을 그룹에 확립에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이바지했다.

구 명예회장이 장남 고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긴 1995년 2월부터 그는 그룹의 명예회장직을 지내며 교육 활동과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관여해왔다.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을 재직하면서는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해 기초산업 분야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한편 LG복지재단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솔선수범했다.

또한 그는 1972년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지난해 타계한 구본무 LG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

한편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례절차는 고인의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 LG그룹 측은 “유족들이 온전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고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면서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음을 양해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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