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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인물의 삶과 굴곡, 환경, 시대 배경까지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스포츠서울은 1985년 창간 이래 35년간 현장에서 담은 스포츠 스타들의 다양한 과거 사진을 데이터베이스를 뒤져가며 확보했다. 쉽게 볼 수 없는 스타의 ‘원픽(One Picture)’을 공개한다.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지금은 방송인으로 익숙해진 안정환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형 판타지스타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아주대 시절부터 남다른 기량은 물론 수려한 외모로 스타성을 겸비했던 그는 1998년 부산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에서 프로로 데뷔한 뒤 그야말로 구름 관중을 불러모았다. 특히 긴머리를 휘날리며 국내 선수에게서 보기 드물었던 화려한 개인 전술까지, 최고의 테크니션이란 수식어를 넘어 판타지스타라고 불린 동력이 됐다.
안정환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으로 뛴 뒤 당대 최고 미남 배우 현빈과 화장품 광고를 찍은 일화는 지금도 주요 예능프로그램에서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그의 말대로 현역 시절 화장품 광고만 10년 가까이 하면서 브라운관에서도 주가를 높였는데, 사실 그라운드 밖에서 그의 가치가 제대로 알려진 계기는 패션쇼였다. 소문난 패셔니스타로도 각인된 그는 지난 1999년 12월 16일 고 앙드레김 패션쇼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사진은 당시 런웨이를 걷는 안정환의 모습이다. 당시 캐주얼 정장부터 일반 모델도 소화하기 어렵다는 망사까지 두루 소화했다. 표정부터 자태까지 프로 모델 뺨치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건 이때 스포츠스타로 안정환 외에 야구 스타 이승엽도 런웨이를 밟았다. 안정환의 왼쪽 뒤에 보이는 이가 이승엽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앙드레김 패션쇼를 통해 현재 아내를 만났다. 안정환은 미스코리아 출신 이혜원 씨를, 이승엽은 신인 모델 이송정 씨와 각각 연이 됐다. 안정환은 2년 뒤인 2001년 12월 패션쇼가 열렸던 하얏트호텔에서 이혜원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어느덧 ‘꽃중년 안느’로 불리는 안정환은 과거 사진이나 광고 촬영 영상 등이 예능프로그램에서 회자할 때면 ‘리즈 시절(전성기 시절)’이라며 우습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당시 그라운드 안팎에서 보인 ‘판타지스타 안정환’의 모습은 축구를 넘어 프로 스포츠계에 선수의 프로 의식, 새로운 역할을 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운동만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면 안정환처럼 경기력과 상품성을 동시에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 선수의 자세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세대가 자신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뽐내는 데엔 대선배가 어찌 보면 개척자 구실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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