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공정위 회의장 향하는 김규봉 감독
대한철인3종협회가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의 가해자들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스포츠 공정위원회를 열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규봉 경주시청 철인3종팀 감독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0. 7. 6.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박준범기자] 성적지상주의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괴물’을 만들었다.

고(故) 최숙현 선수는 가혹 행위와 상습적인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로 지목되는 김규봉 감독과 팀의 주장이자 핵심 장윤정은 견제·관리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행태에는 체육계의 만연한 성적지상주의가 한몫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철인3종협회는 최숙현 사건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철인3종협회는 지난 2월14일 2020년 정기대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도쿄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있는 두 선수의 사기 진작을 위해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에게는 1000만원의 포상금을, 해당 선수의 지도자에게는 5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두 선수 중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장윤정이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협회가 대의원총회가 열리기 전, 최숙현 선수의 피해 사실과 장윤정의 가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점이다. 진상조사는 뒷전으로 한 채 올림픽 출전 보상 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 폭력과 폭언이 자행돼도 축소, 은폐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협회의 이와 같은 성적과 메달 우선주의에 편승해 간판선수와 감독은 용인될 수 없는 폭력을 거리낌 없이 휘둘렀다. 장윤정은 국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의 대표 주자다. 그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혼성릴레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뿐만 아니라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개인전에서도 5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는 등 경주시가 뛰어난 성적을 내는 데 견인차 구실을 했다. 지도자에게 소속 선수와 팀의 성적은 더욱 중요하다. 선수의 성적이 자신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좋은 성적은 곧 감독직 연장을 의미한다. 결국 팀은 성적에 따라 지도자와 간판선수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직접 나서 “경주시청은 감독과 특정 선수의 왕국”이라고 외친 이유다.

지난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정용철 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스포츠계 인권 유린은 성적과 메달, 승리라는 명분에 가려져 온존해 왔다. 성적을 위해서라면 지도자의 폭행과 강압적인 훈련 그리고 복종적인 문화가 무마되고 은폐되고 축소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십 년간 체육계에 만연해 온 성적지상주의를 단기간에 뿌리째 뽑아낼 수는 없다. 다만, 추가 피해는 막아야 한다. 성적에만 매몰돼 관리 감독을 받지 않는 팀에서 벌어진 참극이다. 성적은 물론이고 선수와 지도자를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A 종목 실업팀 코치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시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과정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뤄진다면 어떨까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B 종목 관계자 역시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감독의 경우는 선수 육성과 지역 스포츠에 기여한 부분을, 선수는 자기 발전이나 팀워크에 대한 항목이라도 생기면 그나마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올해는 대한체육회 100주년이다. 대한체육회는 예정돼 있던 100주년 기념행사와 스포츠폭력 근절 결의대회를 모두 취소하고 스포츠 폭력추방 비상대책회의를 비공개로 열기로 했다. 체육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이 대책 마련에 탁상공론을 하고 있는 사이,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또 다른 최숙현은 공포와 불안감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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