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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 전경. 권오철 기자 konplash@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권오철 기자] 한 IBK기업은행 직원이 가족을 동원해 약 76억원 규모의 대출을 일으켜 총 28채의 부동산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각종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는 동안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서 불법 대출 및 부동산 투기가 일어난 것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일반 시중은행은 직원 본인과 인사정보상 직원의 가족에 대해선 대출 거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시스템화 돼있다. 기업은행 측은 관련 시스템을 확대하기로 했다.

미래통합당 윤두현 의원이 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대출취급의 적정성 조사’ 문건에 따르면 기업은행 경기 화성의 모지점 A차장은 2016년 3월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가족 앞으로 대출 29건을 일으켰다. A차장 가족이 대표이사인 5개 법인 기업이 26건(73억3000만원), 개인사업자가 3건(2억4000만원)의 대출로 총 75억7000만원 규모다.

이 대출에 잡힌 담보물은 경기화성 등 아파트 총 18건, 경기화성 등 오피스텔 총 9건, 경기부천 연립주택 2건 등 총 28건이다. A차장은 지난 4년간 주택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신의 근무지 인근의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평가차익만 50억~6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A차장이 본격적으로 가족 명의 회사 등으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일으킨 시기는 현 정부가 부동산 규제 정책을 쏟아냈던 시기와 겹친다. 정부가 2017년 6월 19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총 23건의 크고 작은 부동산 규제 정책을 쏟아내는 동안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직원은 ‘셀프 대출’을 통한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 것이다.

기업은행 이 사건에 대해 “여신 및 수신 업무 취급절차 미준수 등 업무처리 소홀 사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기업은행 측은 A차장을 ‘이해상충행위 금지위반에 따른 금융질서문란’ 등의 사유로 징계면직 처리했다. 그러나 A차장이 수십 건의 대출을 일으킬 수 있도록 승인해 준 당시 지점장 등에 대해선 처분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꼬리자르기’ 의혹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선 윤종원 기업은행장에 대한 책임 추궁과 불법대출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민주당 노웅래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서민에게는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등을 들먹이며 까다롭게 굴면서 자기들은 셀프 심사를 통한 ‘프리 패스’로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은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은행장을 포함한 책임자와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부동산담보대출 승인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얼마든지 이같은 ‘셀프대출’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상 부동산담보대출은 신용대출과 달리 지점장 등 실무자의 윗선이 차주를 직접 만나는 절차 없이 대출을 승인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동산담보대출은 차주의 신용보다 담보물의 시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유사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가족 등 관련인 거래 제한 확대, 직원 대상 교육 강화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사건이 다른 은행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본인과 인사정보상 직원의 가족으로 등재돼 있는 경우 시스템에서 에러가 나 원천적으로 대출이 이뤄질 수 없게 돼 있다. 대부분 시중은행이 동일한 시스템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에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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