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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권오철 기자] “고객이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은행이 ‘인출해 줄 돈이 없어서 못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고객의 인출 주문 자체를 임의로 취소할 수는 없다.”

대신증권 라임펀드 피해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대신증권 불법전산조작 의혹 사건’은 이런 당연한 사실을 뒤엎은 것과 유사하다는 얘기였다. 이 피해자는 “증권사가 고객의 펀드 인출(환매) 신청을 취소로 조작하면 고객은 그 펀드에서 영원히 못 빠져나오지 못한다. 누구도 고객의 허락 없이 인출 신청을 철회한 것처럼 바꿀 수 없다. 그래서 고객에게 비밀번호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2019년 10월 2일 발생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환매 연기 소식을 들은 대신증권 라임펀드 투자자 수백명이 이날 오후 2시를 전후로 전산시스템을 통해 환매(매도주문)를 신청했다. 당초 개인투자자들은 매월 20일 환매 신청을 할 수 있었으나 이날 오전 대신증권 측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일 환매할 수 있도록 약관을 변경해 환매 신청자들이 일제히 몰렸다. 이에 고객들은 실제로 환매가 이뤄지는 결제일(2019년 11월 7일)까지 받았다. 고객들의 환매 신청은 한국예탁결제원과 라임자산운용의 승인 과정을 거쳐 정상적으로 절차가 완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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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신증권 고객이 2019년 10월 2일 라임펀드에 대한 환매를 신청한 전산시스템 화면. 주문시각과 결제일이 확정된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이틀 뒤 대신증권은 “10월 2일 급하게 약관변경을 통해 환매를 진했으나 금융감독원에서 ‘특정펀드 수혜’라는 이유를 밝혀 취소가 됐다”며 환매 취소를 통보했다. 대신증권 전산시스템에는 환매 신청을 했던 고객의 주문은 10월 2일 오후 7시 무렵 돌연 ‘취소’로 변경됐다. 이는 라임자산운용이 취할 수 있는 환매 ‘연기’와 달리 고객이 비밀번호를 통해 직접 조작해야 하는 부분이다. 피해자들은 이미 환매신청이 들어간 전산자료에 대한 불법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대신증권 전산시스템 상의 ‘환매 신청 → 취소’ 사건이 발생한 배경이다. 일각에선 금감원이 환매 취소를 종용하며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특정펀드’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특정펀드는 ‘라임 테티스11호’로 추정된다. 예탁원 로그 자료에 따르면 2019년 9월 30일 테티스11호에 대한 80억원 규모의 환매가 청구됐다. 일반 펀드는 환매 신청 후 결제까지 한 달이 걸리지만 테티스11호는 4영업일 만에 결제가 되는 특수펀드다. 일반 펀드가 10월 2일 환매 신청 및 취소가 발생한 이후에도 테티스11호에 대한 환매신청은 같은 달 4일까지 유지됐다가 이날 취소됐다. 이후 테티스11호에 대한 결제일인 같은 달 7일 다시 환매신청 상태가 복원됐다. 형평성을 고려한 금감원 등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테티스11호에 대한 결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테티스11호는 이종필 전 라임운용 부사장을 비롯해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위인 최모씨와 그 가족들이 가입한 펀드로 뒤늦게 드러났다. 일각에선 불법을 무릅쓴 전산조작 사건이 발생한 배경이 테티스11호의 환매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테티스11호의 거액 환매를 덮기 위해 다른 일반펀드가 환매신청 들러리로 나선 것이란 해석이다. 이 사건 피해자들의 1차 고소에 대해‘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한 검찰이 항고장을 접수한 지금에라도 제대로 된 수사에 나설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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