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Y00089_1

SRY00157_1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류준열은 ‘게으른’ 배우로 유명하다. 스스로 “게으르고, 몸 쓰는 것을 싫어하는 배우”라고 소개하곤 한다.

그럼에도 매 작품 속에 스며들 듯 연기할 수 있는 건 그의 동물적인 감각 덕분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후 ‘더킹’(2017), ‘택시운전사’(2017), ‘리틀 포레스트’(2018), ‘독전’(2018), ‘뺑반’(2019), ‘돈’(2019), ‘봉오동전투’(2019), ‘외계+인’(2022) 까지 매 작품마다 개성강한 캐릭터를 매끄럽게 소화해낼 수 있던 건 오롯이 타고난 연기력의 힘이다.

그런 류준열이 게으름을 버렸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올빼미’에서 주맹증을 앓고 있는 침술사 경수 역을 연기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 시간을 가졌다. 류준열은 “딱 봐도 쉽지 않은 역할이지만 시나리오가 주는 매력이 있어서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4aaa56be3df9939d778d1e401a1d8f23
280c25fd2d46ffaacb22b77d46c53f47
◇주맹증 침술사 연기...촬영한지 1년째인데 여전히 시력 초점 못맞춰

류준열이 연기한 경수는 낮에는 보지 못하지만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앓는 인물이다. 영화는 빼어난 침술실력을 가진 경수가 궁에 입궐한 뒤 우연히 소현세자(김성철 분)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류준열은 경수 역 연기를 위해 실제 주맹증 환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생활상을 관찰하기도 했다.

“‘올빼미’는 준비할 부분이 많았다. 원래 촬영 전 시나리오를 많이 읽고 촬영에 들어가면 잘 안 읽곤 하는데 이번에는 촬영 중간에도 시나리오를 계속 읽고 연기수정을 계속 했다. 감독님과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등 전작과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맹인 연기를 위해 특정 작품을 찾아보기보다 실제 주맹증을 앓는 분들을 인터뷰하며 사소한 생활습관 등을 몸에 익혔다. 관객들은 배우인 내가 앞이 보이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인물의 심리와 작품이 주는 몰입포인트에 신경썼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주맹증 환자들이 익숙한 공간에서 뛰어다니고 식사도 능숙하게 하는 생활 습관을 알게 됐고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녹여냈다. 처음 시나리오에서 히어로 느낌이 강했던 경수의 캐릭터를 톤다운시키기도 했다.

7efacb00ff61f34a02df3e67c745d488

7030b50825fec8f0875acdb6fbca4dd5

압권은 경수가 실제로 눈이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눈앞까지 바늘을 들이대는 장면이다. 류준열은 “사실 CG로 바늘 길이를 연장한 것”이라고 여유있게 말하면서도 “짧은 바늘도 위험한건 매 한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상하게 연기할 때 초인적으로 견디곤 한다”며 웃었다.

‘올빼미’는 지난해 가을 약 3개월간 촬영한 작품이다. 촬영을 마친지 1년이 지났지만 류준열은 여전히 아침에 초점을 잡지 못한다. 일종의 ‘산재’다.

류준열은 “아침에 일어나면 초점이 안 잡혀서 흐릿하게 보인다. 이를테면 소주를 1주일에 2~3번, 몇 잔씩 마시는 것보다 3개월 동안 매일 2병씩 마시는 게 몸에 안 좋은 것처럼 3개월 동안 매일 눈의 초점을 빼고 산 후유증이 더 컸다. 안과에서는 그냥 초점을 잘 잡으라고 한다. 다행히 시력은 아주 좋은 편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SRY00076_1

SRY00035_1
◇스태프들과 집요한 커뮤니케이션...영화 제작에 대한 로망 있어

류준열은 이번 작품에서 유독 스태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그 어떤 작품보다 집요하게 묻고 따진 작품”이라며 “스태프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배웠다”고 자평했다.

“영화는 공동의 작업이다. 자기 몫을 잘하면 현장은 굴러가지만 배우가 연기만 하는 것 이외의 부분도 필요하다. 묻고 따지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디어를 냈고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영화 제작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는 류준열로서는 ‘올빼미’ 촬영현장이 일종의 학교가 됐다. 그는 “또래 동료들 중 입봉을 하지 못한 감독이 많다. 많은 대본을 받아보는 제 입장에서는 트렌드에 밝은 편이다 보니 신인감독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며 “이번 작품에서도 제작자의 관점에서 임했다”고 했다.

류준열은 올해 두편의 영화 주연으로 나섰다. 앞서 ‘외계+인’은 기대에 못 미치는 스코어로 아쉬움을 샀다. ‘올빼미’는 웰메이드 사극으로 호평받았지만 최근 극장가 분위기 때문에 섣불리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류준열은 자신감을 피력했다.

“스코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영화가 주는 미덕을 갖고 보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다. 스코어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