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동영기자] “형들한테 막 해야겠어요.”

거의 평생을 위계질서가 강한 ‘운동 선수’로 살아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상했다. 설명을 들으니 설득력이 있다. 말을 한 사람이 SSG 김광현(35)이기에 더욱 그랬다.

김광현은 2007년 SK(현 SSG)에 입단해 한 팀에서만 뛰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입단 전부터 초특급 선수로 주목을 받았고, 계약금 5억원을 받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왔다.

데뷔 첫 시즌부터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20경기에 출전했다. 2년차인 2008년에는 27경기 162이닝, 16승 4패, 평균자책점 2.39를 찍으며 리그 최정상급 선발로 우뚝 섰다.

이후 행보는 모두가 알고 있다.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고,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도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여전히 SSG 최고 에이스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구설수가 없다. 어린 시절 “당차다”는 평가를 받은 적 있지만, “예의 없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각종 선행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자연히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는다.

이런 김광현이 살짝 심경의 변화(?)를 겪은 일이 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다녀오면서 느낀 것이 있단다. 소속 팀과 대표팀에서 자신의 ‘위치’기 달랐기 때문이다.

김광현은 “팀에서는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표팀 갔더니 내가 투수 최고참이더라. ‘늙은이 취급이 이거구나’ 싶었다. 선배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은 후 “선배들에게 막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선배에게 너무 깍듯하게 하면 오히려 ‘나이 먹었다’고 생각할 것 같더라. 편하게 지내야겠다는 뜻이다. 막 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겠다 싶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대표팀에 갔더니 어린 선수들이 많았다. 나도 어렵더라. ‘빠져줘야 하나?’ 했다. 팀에 돌아왔으니 선배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그런 생각이 안 들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미소를 보였다.

지난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후 마운드를 향해 달려오는 포수 박경완을 향해 모자를 벗고 90도로 인사했다. 선배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다. 그 장면 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8년이 흐른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도 김광현이 마지막 투수였다. 두산 박건우를 삼진 처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후 뒤로 돌아 두 팔을 번쩍 들며 야수들과 기쁨을 함께했다.

지난 1일 개막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개인 통산 150승 고지를 밟았다. 사흘 후 선수단을 비롯한 구단의 모든 관계자들에게 피자가 배달됐다. “나 혼자 만든 150승이 아니다”라며 김광현이 준비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슈퍼스타’지만, 혼자 잘난 선수가 아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안다. ‘형들에게 막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묘한’ 역지사지다. raini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