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메이저리그의 4월15일(현지 시간)은 흑백의 벽을 허문 ‘재키 로빈슨 데이’로 기념한다.
1947년 4월15일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 2루수 로빈슨은 홈 에버츠필드에서 보스턴 브레이브스전에 출장한다. 미국 메이저 종목 사상 흑인이 처음으로 출장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당시 개막전에 입장한 2만6623명 가운데 1만4000 여명이 흑인이었다고 기록됐다. 로빈슨은 MLB에 데뷔하기 전 캔자스시티 모나크스 니그로리그에서 활동했다. 모나크스는 니그로리그 최강팀이었다.
2014년 버드 실릭 커미셔너는 4월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선포했다. 4월15일에는 코칭스태프 및 전 선수들이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을 달고 출장한다.
1997년 뉴욕 메츠 홈 세이스타디움에서 등번호 42번이 영구결번될 때 메이저리그 봅 듀푸이 베이스볼 오퍼레이션 사장은 “야구뿐 아니라 미국가 전체를 위한 일이다”며 로빈슨을 기렸다. 미국 스포츠 사상 최초 리그의 영구결번자가 로빈슨이다.
내셔널리그 신인왕, MVP를 수상한 로빈슨은 실제 야구 선수로서 뿐 아니라 시민으로서도 위대한 삶을 살았다. 은퇴 후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하며 민권운동에 앞장섰다. MLB에 데뷔하기 전 포병장교로 3년 군복무를 마쳤다.
1960년대 뉴욕의 할렘을 중심으로 흑인들을 중심으로 프리덤 내셔널 뱅크 설립도 이끌었다. 이 시절에도 흑인들은 은행대출이 거의 봉쇄돼 있었다. 1972년 사후 미 의회는 콩그레셔널 골드메달을, 정부는 대통령자유메달로 로빈슨의 헌신적인 삶을 위로했다.
다저스 로버츠 감독도 경기 전 “재키의 삶이 있었기에 마커스 스트로맨(시카고 컵스 투수)이 듀크 대학에 다닐 수 있었고, 아시안, 라틴아메리칸, 흑인들이 현재 차별없이 MLB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로버츠는 로빈슨의 대학(UCLA)의 후배로 존경심이 각별하다. 다저스 최초의 소수계 감독이 로버츠다.
올해 MLB 선수들은 ‘장벽을 깨다(BREAKING BARRIER)’는 검은 언더셔츠를 입고 경기 전 훈련을 했다. 다저스 로버츠, 시카고 컵스 데이비드 로스 감독도 이 셔츠를 입었다. 양 감독의 경기 전 브리핑 첫 질문은 재키 로빈슨 데이 관련이었다.
특히 로빈슨과의 인연을 뗄 수가 없는 다저스는 외야수 제이슨 헤이워드가 경기 전 헌사와 로빈슨 손녀의 시구를 받아주며 팬들과 함께 재키 로빈슨 데이를 기념했다. 미국 국가는 로빈슨이 졸업한 애너하임의 존 뮤어 고등학교 합창단이 불렀다. 구단은 팬들에게 재키 로빈슨의 42번 저지를 선물했다. 이날 다저스타디움에는 5만2371명이 입장했다.
1972년 로빈슨이 사망 후 남편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레이첼 여사는 100세의 고령. 건강이 허락치않아 공개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다.
로빈슨은 1956년 시즌 후 라이벌 SF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됐으나 은퇴를 선언해 영원히 다저스맨으로 남았다.
moonsy10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