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소 잃고 외양간은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외양간이 무너질 걸 알고도 지켜만 보다 실제로 사고가 터지니 인제 와서 수리한다는 주인은 믿을 수 없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 8일 사과문을 통해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의 참패에 관한 책임감을 통감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협회는 남녀 배구대표팀 사령탑과 경기력향상위원장의 사임을 알리며 “국가대표팀 운영 방향을 심사숙고하여, 2028 LA올림픽 및 2032 브리즈번올림픽 출전을 위한 새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한국 배구가 성장통을 거쳐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실행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11월 중으로 공청회를 개최하고, 지도자 선발, 대표팀 지원에 힘쓰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이제 와서 쇄신하겠다는 협회를 믿어도 될까. 이미 아시안게임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한국 배구는 올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남자대표팀은 국제 무대에 나서지 못한 지도 5년이 지났다. 심지어 올해에는 아시아 무대에서 연속으로 고배를 마셨다. 일본과 중국, 이란이 불참한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저컵에서 준결승 탈락했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전에 짐을 싸는 게 그렇게 이상한 그림은 아니었다. 여자부 사정도 다르지 않다. 2년 연속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전패를 당했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6위에 머물렀다. 파리올림픽 예선에서도 7연패를 기록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갑자기 메달권에 진입할 것이라 기대하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협회를 신뢰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고’가 난 후에야 사후 대책을 수립하려는 조직이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배구계 관계자는 국가대표팀을 협회가 아닌 한국배구연맹에서 운영하거나 공동으로 주체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실제로 협회를 보는 배구 관계자들의 신뢰도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한 관계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협회를 일 잘하는 조직으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숙하고 일부는 책임 의식이 부족한 조직으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한국 배구가 이렇게 된 것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연맹이 대표팀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현직 V리그 지도자도 “지금 보면 한국 배구를 놓고 더 고민하는 쪽은 협회가 아니라 연맹 같다. 지난 7월에도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제를 발표한 조직은 협회가 아니라 연맹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연맹은 지난 7월 여자대표팀이 VNL에서 전패를 당하자 국내 배구의 체질 개선 및 선진화된 리그 운영,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신규 추진 과제(해외 팀 초청, 유소년 배구 활성화, 선수 및 지도자 해외 연수, 공인구 교체 등)를 선정해 발표했다.

야구대표팀의 사례만 봐도 불가능한 변화는 아니다. 야구대표팀은 현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만 실질적인 주체는 KBO다. 재정과 기술, 운영 등 여러 면에서 KBO의 조직 규모가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은 모델로 평가받는다.

배구협회도 여력이 부족하다면 연맹에 운영을 이관하거나 야구처럼 공동 주체로 변화하는 것도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서는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한국 배구는 V리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만큼 일정이나 선수 차출, 지원 등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V리그 현직 지도자는 “고려할 만한 변화라고 본다. 지금은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 배구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바닥까지 내려왔다. 모두가 고민하고 발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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