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함상범 기자]전통적으로 영화계 비수기로 꼽히는 10월, 차세대 한국 영화계를 이끌 여우(女優)들이 OTT영화와 스크린 공략에 나선다.

배우 전종서는 자신의 연인 이충현 감독과 넷플릭스 신작 ‘발레리나’로 다시금 강렬한 액션연기를 펼친다. 영화 ‘다음소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신예 김시은과 학교폭력가해의혹으로 장시간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던 박혜수는 배우 조현철의 첫 장편 데뷔작 ‘너와 나’에서 여고생의 푸릇푸릇한 정서와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다.

두 작품은 주제 의식과 장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지만,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얼핏 보면 우애인가 싶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인 것 같은 묘한 지점이 같다. 그렇다고 장르를 퀴어로 구분하기엔 농도가 얕다. ‘발레리나’의 우정은 핏빛 복수로 변화하고, ‘너와 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추모로 향한다.

◇‘발레리나’ 성착취 당한 친구 위한 잔혹복수극

경호 업무를 하는 옥주(전종서 분)는 외롭다. 가족도 친구도 없다. 숨구멍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동창 민희(박유림 분)를 만난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때 묻지 않은 미소로 순수하게 다가와 준 민희가 옥주의 유일한 숨통이다.

국내 최상급 싸움 실력을 갖춘 옥주는 최프로(김지훈 분)를 쫓는다. 최프로에게 성착취당한 민희의 복수를 위해서다. 최프로는 물론 그의 조직마저 말살한다. 죽는 그 순간까지 언어로 고인을 희롱하는 최프로를 뜨거운 불로 지져버린다. 필요 이상으로 잔혹하고 과감하게 조직을 단죄하는 옥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마음이 우정 이상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잠을 못 이뤄 뒤척일 때나, 최프로가 녹음된 영상의 목소리로 그의 성향을 파악할 때, 홀로 조직을 치러갈 때 끊임없이 민희와 추억을 떠올린다. 순수하게 옥주를 대하는 민희와 그런 민희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옥주의 얼굴이 교차된다.

결국 옥주는 민희의 복수에 성공한다. “지옥에도 널 쫓아갈거야”라며 화끈한 일갈을 날린다. 그러나 이미 고인이 된 친구는 돌아오지 않는다.

‘발레리나’는 서사적인 면에서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조명과 미술을 활용해 영화 전반을 발레리나들이 떠 있는 무대처럼 묘사한 대목이나 전종서를 앞세운 강렬한 액션, 훌륭한 미장센은 충무로의 차세대 대들보로 주목받는 이충현 감독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두 여고생의 애틋한 우애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오후, 세미(박혜수 분)는 담임 선생님을 조른다. 하은(김시은 분)에 대한 불길한 꿈을 꿨다며, 조퇴를 요구한다. 자전거 사고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하은을 만나기 위함이다. 선생님의 단호한 반대에도 결국 조퇴에 성공한 세미는 하은과 만난다. 이번엔 하은에게 “함께 수학여행에 가자”고 조른다.

하은은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가정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 병원비로 큰돈을 써 수학 여행비도 마련하지 못했다. 최근에 키우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넘어 마음이 늘 울적하다. 워낙 밝고 재밌는 성격 덕에 세미를 만나면 웃고 있지만, 속은 눈물이 넘친다. 세미는 이걸 전혀 모르는 채 자기 마음만 알아달라고 말한다.

하은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에 불안해하고, 다른 친구와 더 친한 걸 질투한다. 손을 씻고 온 하은이 향기가 좋다고 하자, 코에 막 갖다 대며 향기를 맡는 등 필요이상으로 과잉 애정을 요구한다. 마치 연인끼리 그러듯 하은에게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친다.

영화는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며 더 깊어지는 두 여고생의 우애를 섬세하게 담았다. 30대 남성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10대 여성의 감성을 한껏 묘사했다. 세미와 하은의 마음이 예쁘다는 것에 설득되면, 곧 슬픈 감정이 밀려온다. 2014년, 안산역. 두 사람의 수학여행이 어떤 의미인지 영화는 에둘러 전달한다.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만듦새와 이음새가 훌륭하지는 않지만 주제의식을 향해 달려가는 신인감독의 뚝심은 칭찬받을 만 하다.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메시지를 여고생들의 우정과 질투, 풋사랑과 짝사랑, 오해와 불안으로 조명해 오히려 더 강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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