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기자] 호쾌한 스윙. 맞는 순간 2만7000여 관중이 벌떡 일어났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타구에 모든 시선이 꽂혔다. 강한 스윙에 의한 원심력 탓에 1루쪽으로 한두 발 걸어가던 타자는 관중들보다 먼저 홈런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오른손으로 배트를 높이 치켜들고 1루로 걸어나가던 그는 일제히 터져나온 관중 함성과 동시에 배트를 땅바닥에 팽개치고 포효했다. 역전 투런.

‘참치’가 축포를 터트렸다. 벌떼마운드를 홀로 이끌며 버팀목이 되더니 고생한 투수들을 보듬는 결정적 한 방을 터트렸다. LG가 총액 65억원에 프리에이전트(FA) 포수를 영입한 효과를 한국시리즈(KS)에서도 톡톡히 누렸다. 영양가 만점이다.

박동원(33)이 LG의 29년 묵은 한을 자신의 힘으로 풀겠다는 각오를 호쾌한 타격으로 증명했다. 박동원은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2023 KBO리그 KS 2차전에서 3-4로 뒤진 8회말 1사 2루에서 KT의 차세대 소방수 박영현을 상대로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2점 홈런을 뽑아냈다.

선발 최원태가 0.1이닝 4실점으로 고개를 떨궈 주도권을 내준 경기였는데, 이후 추가실점 없이 버틴 끝에 기회를 잡았다. 1-4로 끌려가던 6회말 오지환이 우월 솔로 홈런으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렸고, 7회말 김현수가 우익선상 2루타로 1점 차를 만들었다.

정규시즌 챔피언의 기세는 8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오지환이 볼넷을 골라 나가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문보경이 희생번트로 1사 2루 기회를 만들자 박동원이 회심의 한 방으로 화룡점정했다. 박영현-장성우 배터리는 초구로 체인지업을 선택했는데, 박동원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체인지업(시속 124㎞)에 회전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밋밋하게 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한가운데로 날아들었다. 반박자 빠르게 시동을 건 박동원의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았고, 27.45도로 이상적인 포물선을 그리며 122m를 비행해 좌중간 관중석에 꽂혔다. 맞는 순간 모두가 홈런을 직감했고, 다함께 포효했다. 타구속도는 시속 166㎞.

박동원으로서는 의미있는 KS다. 염경엽 감독과 히어로즈 소속으로 처음 출전했던 2014년에는 여섯 경기에서 장타 없이 타율 2할에 그쳤다. 2019년에도 KS 무대를 밟았지만, 주전 포수와는 거리가 있었다. 포수로서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했고,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에서 영광을 누리고 싶었던 박동원이 LG와 손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시즌 130경기에서 20홈런 타율 0.249로 장타력을 뽐냈고, 팀 평균자책점 1위(3.67)를 견인하며 ‘포수 박동원’ 이름을 아로새겼다. 젊은 투수들을 이끌고 최소볼넷 2위(491개)로 막아선 것도 소통을 중요시하는 박동원의 힘이다.

1차전 패배에 2차전 1회초 빅이닝 헌납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박동원은 “동료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한 점씩 따라가 흐름을 지켜준 게 승리의 동력”이라며 “힘든 경기였는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동료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구장을 꽉 채워주신 팬 기대에 부응해서 너무 기분좋다. 원정 두 경기를 치른 뒤 다시 잠실로 돌아올텐데, 그때도 승리로 보답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포수’ 타이틀에 성큼 다가선 박동원이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