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기자] “홈런보다 번트 성공이 기뻤어요. 정말 번트 성공하고 너무 좋았어요.”

팀도 선수도 징크스를 시원하게 털어냈다. 큰 무대에서 유독 약했던 모습은 2023 한국시리즈(KS)를 기점으로 안녕이다. 29년 만의 우승으로 참 많은 것을 얻은 LG와 문보경이다.

반전 무대가 됐다. 1년 전 플레이오프에서 희생 번트 실패로 눈물을 참지 못했던 그가 자신 있고 당당하게 최고 무대를 누볐다. KS 5경기에서 타율 0.471 1홈런 4타점 OPS 1.241로 펄펄 날았다. 첫 포스트시즌 무대였던 2021 준플레이오프 시리즈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AG)처럼 침착하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렇게 AG 금메달과 통합우승에 따른 우승 반지를 두루 거머쥐었다. 2023년을 더할 나위 없는 해로 만들었다.

문보경은 “정말 최고의 해를 보낸 것 같다. AG 우승도 좋고, 우리 팀 우승도 정말 좋다. 29년 만의 우승, 그리고 나는 프로 입단 5년 만의 우승인데 정말 기쁘다. 29년 동안 팬분들이 기다렸던 우승을 이뤘고 내가 그 우승 멤버가 됐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그는 오직 ‘팀 승리’만 바라봤음을 강조했다. KS에서 4할대 후반 고타율을 올린 것도 모른 채 한 경기 한 경기 승리만 생각한 결과가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타율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얘기해 주셔서 그때 알았다”고 말한 문보경은 “4차전 끝나고 아버지가 타율이 5할이 넘는다고 해주셨다. 그때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팀이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뛰었다”며 “과감함이 비결인 것 같다. 시즌 때보다도 더 과감하게 치려 했다. 공을 너무 보면 카운트만 불리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히 갔고 덕분에 잘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보경의 말처럼 적극성이 통했다. 초구부터 주저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자신의 포스트시즌 통산 첫 홈런도 나왔다. 4차전 6회초 김재윤을 상대로 초구 속구를 공략해 좌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작렬했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상단에 걸친 공을 그림처럼 공략해 반대 방향으로 타구를 날렸다.

안타, 홈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보경은 홈런보다 2차전 번트 성공에 의미를 뒀다. 2차전 8회말 선두 타자 오지환이 출루했고 문보경의 희생 번트로 1사 2루가 됐다. 그리고 박동원의 역전 결승 투런포가 터졌다. 1회초에만 4실점해 0-4였던 경기가 5-4로 끝났다. KS 4연승의 시작점이었다.

문보경은 “홈런보다 번트 성공이 기뻤다. 정말 번트 성공하고 너무 좋았다”고 웃으며 “솔직히 작년 생각이 안 날 수 없었다. 불현듯 작년 플레이오프 상황이 떠올랐고 그래서 긴장도 했다. 그런데 그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번트로 인해 우리가 역전할 수 있었고 경기를 이겼기 때문에 시리즈 전체를 놓고 봐도 당시 번트가 중요했던 것 같다”고 역전 명승부를 만든 순간을 돌아봤다.

3차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고 공을 땅바닥에 던진 것에 대해서는 “‘와 진짜 이겼다’, ‘우리가 이걸 이기다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공을 던졌다”며 “사실 5차전 마지막 아웃 카운트 상황도 생각을 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마지막 공을 잡는 게 되니까 공을 주머니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공이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AG과 KS를 모두 정복한 만큼 2023년 자신에게 100점을 줬다. 그러면서 올해 모습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을 다짐했다. 문보경은 “올해 큰 무대를 두 번이나 올랐다. 정말 좋은 경험이 됐고 이 경험이 내게 좋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24년에 또 KS에 오르게 되면 2023년에 잘했던 기억이 나면서 다시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2연패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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