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도하=강예진 기자] 롤러코스터 같은 경기 속 ‘주장의 품격’이 빛났다. 손흥민이 찰나의 순간 기지를 발휘해 한국의 8강행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손흥민은 지난 31일 카타르 도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은 승부차기 선축할 팀을 정할 시점, 주심에게 무언가를 항의했다. 동전 던지기로 승부차기를 할 골대와 선축 팀을 정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얘기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대한축구협회(KFA) 관계자에 따르면 주심은 본부석 기준 왼쪽 골대에서 승부차기를 진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방송 중계 카메라 역시 왼쪽 골대 쪽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정한 사안이었다.

손흥민이 항의에 나섰다. ‘규정대로’ 동전 던지기를 통해 골대를 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대쪽의 골대 뒤는 온통 사우디 팬들뿐이었다.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던 요인이 즐비했다.

주심은 규정대로 하자는 손흥민의 반발에 다시 동전던지기로 골대를 정했고, 승부차기는 20명 남짓한 붉은 악마가 모여 있는 왼쪽 골대에서 진행됐다.

한국은 손흥민을 시작으로 김영권, 조규성까지 모두 깔끔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골키퍼 조현우는 사우디 3~4번째 키커의 슛을 ‘슈퍼 세이브’ 하면서 힘을 실었고, 4번째 키커로 나선 황희찬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선제 실점한 뒤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조규성의 ‘극장 동점골’이 터졌고, 연장 혈투 끝 승부차기에서 드라마를 쓴 것이다.

골대 방향이 한국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바꿔놓은 건 아니지만, 이날 경기장에는 4만명이 넘는 사우디 팬이 집결했다. 경기장은 온통 사우디의 ‘초록 물결’로 뒤덮여 있었고, 경기 내내 ‘일방적인’ 응원소리가 경기장을 가득채웠다. 한국이 공을 잡을 땐 야유를 거세게 퍼부었다.

승부차기는 ‘심리 싸움’이다. 못 막아도 크게 타격 없는 골키퍼와 달리, 키커는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만약 사우디 서포터즈가 집결해 있는 반대 골대에서 승부차기가 진행됐다면 사우디 팬들의 야유와 방해 소음에 한국 선수들이 흔들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흥민의 기지가 선수들이 붉은 악마의 응원을 조금이나마 등에 엎고 승부차기에 나설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을 만들어준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국제 경험이 많은 손흥민의 판단이 빛났다”라며 미소 지었다. kk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