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한국 귀신은 한이 서렸고, 일본 귀신은 원망한다. 한의 정서는 서러움이고, 원망은 분노가 기반이다. 그래서 일본 귀신은 보이는 족족 죽이고, 한국 귀신은 고통을 준 핏줄만 죽인다. 두 국적 귀신의 공통점은 슬픈 사연이다.

유해를 다른 곳에 이장할 때 파묘(破墓)를 한다. 아무리 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넋이 된 조상의 보금자리를 파헤치는 건 긴장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22일 개봉하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한을 꺼낸 뒤 원망을 발견하고, 원혼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국내 최고 무당 화림(김고은 분)과 봉길(이도현 분)은 미국 부자 가문의 장손을 만났다. 돈은 많지만, 가족이 아프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이는 희소병에 걸렸고, 부친은 정신병에 시달린다. 장손의 귀에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의학적으로 도무지 해결이 안 되자, 무당을 찾았다.

화림은 집안의 묫자리가 화근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베테랑 풍수지리가 상덕(최민식 분)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분)을 불러 파묘 후 화장을 결심했다. 묫자리를 둘러 본 상덕은 파묘도, 이장도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돈과,주위사람들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파묘를 강행한다. 이후 네사람은 역사의 비밀과 마주한다.

오컬트 장르 분야에선 거장으로 꼽히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의 소재는 무속신앙과 토속신앙이다. 천주교를 베이스로 한 ‘검은 사제들’과 불교와 기독교를 소재로 한 ‘사바하’와 다른 포인트다. 오랜 기간 취재한 자료가 영화 곳곳에 녹아있다. 배우들의 동선과 움직임, 경쾌한 행동이 크고 작은 장면에 모두 담겨 있다. 에너지가 남다르다.

음양오행으로 시작하는 소재에 맞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MZ세대에게 다소 낯선 이야기를 간결하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김고은의 신들린 굿판이 인상적인 ‘대살굿’, 울컥울컥 피를 토하는 이도현의 열연이 돋보인 ‘영안실 경문’ 같은 퍼포먼스로 심박수를 높이며 관객을 정통 무속 세계로 끌어들인다. 화려한 볼거리,들을거리에 눈과 귀가 즐겁기까지 하다.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배경이다. 어떻게 이토록 멋진 경관을 찾아냈을까 싶을 정도로 스산하고 또 아름다운, 압도적인 그림이 인물들이 이동할 때마다 등장한다. 묘지나 장례식장, 절을 비롯해 작은 소품까지도 정성이 엿보인다. 장엄하게 흐르는 음악은 몰입을 더 빠르게 이끈다.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에 비해서는 공포의 농도가 얕다. 서스펜스와 스토리가 그 자리를 채워 보다 폭넓은 대중들이 두루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배려했다. 4명이 인물이 합심해서 비밀을 찾아 나가는 과정의 밀도가 촘촘하다. 후반부까지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관객이 숨을 쉴 수 없을 때쯤 툭 던지는 은은한 유머로 긴장을 풀게 한다. 영리하고 노련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후반분에는 예상 밖의 설정이 등장한다. 장재현 감독의 노림수다. 그간 장 감독 영화의 결과 다른 이 설정은 역사에 담긴 한국의 한과 트라우마를 뒤엎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여러 반응이 예상될 것임을 충분히 알았음에도 그 길을 걸어간 감독의 용단이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다. 최고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앙상블이다. 화림이 길을 뚫어놓으면, 상덕이 묵직하게 밀고 간다. 영근이 재기발랄하게 열어젖히고, 봉길이 단단하게 뒷문을 닫는다. 대사에서 오고 가는 깊이는 물론,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서로 충돌하고 엉겨 붙는 네 사람의 에너지가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단단하게 매듭짓는다.

오컬트 장르에 흥미가 없는 관객들도 ‘파묘’를 본 뒤엔 장 감독의 전작을 역주행할 가능성이 크다. 장 감독의 기존 팬들은 새로운 도전이라 느낄 것 같다. 감독의 전작과 결이 다르지만, 경로를 이탈하진 않았다. ‘서울의 봄’을 이을 강력한 영화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