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피살됐다고 하마스와 이란이 31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지구 전쟁이 약 10개월째 이어지는 와중에 하마스 서열 1위 지도자가 이란 심장부에서 급사하면서 중동 정세가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확전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이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전면전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마스는 이날 오전 성명에서 “순교자 하니예가 이란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테헤란의 거처(residence)를 노린 시온주의자들(이스라엘)의 기만적인 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도 성명에서 “하마스 정치국장 하니예가 오늘 아침 테헤란 거처에서 공격받아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순교했다”고 확인했다. 혁명수비대는 이날 늦게 사건 조사 결과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이란 국영 TV가 보도했다.
이란 국영매체는 하니예가 이날 오전 2시께 테헤란의 참전용사 시설에 마련된 거처에 머물고 있다가 암살당했다고 보도했고, 아랍 매체 알하다스도 이날 오전 2시께 날아든 유도미사일이 하니예 거처를 타격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 정치 지도자 하니예가 화요일(30일)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에 사망했다고 하마스가 화요일에 텔레그램에 올린 게시물에서 밝혔다”고 전했으나 이후 이란 국영매체 등은 사망 시점을 ‘31일 오전 2시’로 확인했다.
하니예는 전날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반군 후티 등 이란을 중심으로 한 반서방·반이스라엘 성향의 친이란 이슬람 무장세력‘ 저항의 축’ 관계자들과 함께 이란을 방문, 수도 테헤란에 머물고 있었다.
하마스와 이란의 발표가 맞다면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지난 4월 19일 이후 103일 만으로 이번이 두번째다.
전날 저녁 이스라엘이 자국 점령지 골란고원 축구장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한지 불과 몇시간 만에 이란 심장부까지 타격한 셈이다.
이스라엘은 하니예 사망과 관련해 공식 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현재 군 전선사령부의 지침에는 변화가 없다”며 “이스라엘군은 현재 상황을 평가하고 있으며, 변동 사항이 생기면 공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하니예 사망 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면담했다고 짚으며 “이런 수준으로 보안에 구멍에 뚫렸다는 사실은 암살 직전 하니예와 긴밀히 접촉했던 이란 지도자들의 안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NYT는 하니예가 자신의 근거지로 삼았던 카타르가 아닌 이란 테헤란 방문 도중 숨진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가지지구) 전쟁 발발 이래 이란은 카타르에서 하마스 지도자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란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나섰고 미국은 확전 가능성을 우려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하니예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테헤란에서 일어난 하니예의 순교는 이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사이의 깊고 뗄 수 없는 결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이날 오전 아야톨라 하메네이 자택에서 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긴급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NYT와 타스 등 매체가 각각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혁명수비대 고위급 인사는 이란에서 하마스 지도자를 겨냥한 공격이 일어난 것을 두고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하마스 고위 관리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하니예 암살은 “처벌받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없는 비겁한 행위”라고 좌시하지 않겠다고 보복을 다짐했다.
또 다른 고위 당국자 사미 아부 주흐리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마스는 어떤 지도자의 죽음도 버텨낼 수 있을만큼 강력하다”며 “우리는 예루살렘 해방 전쟁을 치르는 중이며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은 하니예 암살을 두고 “비열한 행위이자 위험한 전개”라며 팔레스타인 주민을 향해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단결하고 인내심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 이란에서 살해됐다는 보도를 봤다면서도 추가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미국 CNN 방송이 전했다.
필리핀을 방문 중인 오스틴 로이드 미 국방장관은 회견에서 하니예 피살에 대한 질문에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면서 “외교를 위한 공간과 기회는 항상 있다”고 답했다.
올해 62세로 가자시티 인근 난민캠프에서 태어난 하니예는 1980년대 1차 인티파타(민중봉기) 당시 하마스에 합류했다.
그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의 대승을 이끌고 총리에 올랐지만, 이후 선거 결과를 둘러싼 하마스와 파타(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주도)간 갈등 속에 해임됐다.
이후 2007년 하마스가 일방적으로 가자지구 통치를 시작하면서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를 맡았다.
하니예는 2017년 2월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를 야히야 신와르에게 넘기고 같은 해 5월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된 뒤 카타르에서 생활해왔다.
가자전쟁 발발 후에는 이집트, 카타르,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과의 휴전협상에 참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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