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살아있네!”

‘작은 거인’ 김수철이 미리 들려준 신보 음원을 미리 경청하며 들었던 생각이다. 과거 “정신차려 이친구야”를 외쳤던 카랑카랑한 목소리, “지기지기자가자가조고조고조”를 또박또박 읊었던 정확한 발음, 쉽고 명료하지만 철학적인 가사에서 전성기 시절 김수철의 음악이 떠올랐다.

가수 김수철이 지난 달 31일 새 정규앨범 ‘너는 어디에’의 음원을 발표했다. 1991년 ‘난 어디로’가 담긴 앨범 이후 33년만의 대중음악 음반이다. 그간 국악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국악 앨범만 발표했던 그는 지난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45주년 기념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마친 뒤 용기를 갖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10년 전쯤 록앨범을 내려고 했어요. 타이밍이 안 맞아 발매하지 못했죠. 그러다 지난해 공연 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새로 앨범을 내야겠다 용기를 얻었어요. 6개월 이상 녹음해 드디어 빛을 보네요.”

타이틀곡은 앨범명과 동명의 발라드곡 ‘너는 어디에’와 ‘나무’다. ‘너는 어디에’는 청년의 잃어버린 순수를 갈망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가난해도 꿈은 내 곁에 있었지/힘이 들고 지쳐서 쓰러졌어도 다시 일어나서 너에게로 달려갔었지/우리 어렸을 때 그렇게 살았지/서로를 안아주며 다독거렸지/세상 부러움이 하나도 없이 행복했었지.”

서정적인 사운드에 시적인 가사가 쓸쓸하게 얹혔다. 또다른 타이틀곡 ‘나무’는 아낌없는 사랑을 나무에 빗댄 곡이다. 그는 이 곡을 들을 때면 최근 별세한 고(故) 김민기가 떠오른다고 했다. 처음부터 김민기를 모티프로 삼은 곡은 아니지만 무명 후배들을 돕던 고인의 모습이 이 노래와 묘하게 겹친다는 의미다.

신명나는 기타 사운드가 돋보이는 ‘아자자’나 ‘그만해’는 MZ세대의 막힌 속을 확 뚫어주는 곡이다. “야야야야아자자아자자”라는 외침으로 시작하는 ‘아자자’는 ‘날아라 슈퍼보드’ OST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원래 10분에 달하는 곡이었지만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 3분 26초 내외로 길이를 줄였다.

‘그만해’는 그의 명곡 ‘정신차려 이친구야’를 인용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여야, 남녀로 분열된 국내 정치, 사회는 물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전 세계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수철은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했다. 컴퓨터 사운드를 활용한 드럼 외 모든 악기도 직접 연주했다. 그는 “33년간 돈 안되는 국악만 하다보니 정말 돈이 없다”고 웃으며 “기타 치고, 그 위에 베이스 연주 얹고 하는 식으로 차근차근 녹음했다”고 설명했다. 뮤직비디오도 2편이나 찍으며 젊은 세대의 문법을 따라가려고 노력 중이다.

“‘별리’랑 ‘못다핀 꽃 한송이’를 대학교 4학년 때 썼어요. 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책도 많이 읽고, 잘 몰라도 예술을 추구하는 척 했거든. 그게 밑거름이 될 줄 몰랐어요.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듣는 분의 몫이죠.”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전성기 때 목소리와 젊은 감성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술 담배도 안하고, 제가 정신연령도 낮잖아요”라고 웃었다.

그는 “후배들과 격의없이 이야기하는 걸 즐긴다. 평생 음악만 했지, 요즘 가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라 성시경, 유희열 등의 조언을 듣곤 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껏 높여줬잖아요. 그 덕분에 제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대중음악, 영화, 스포츠 모두 세계를 제패했으니 이제 국악이 세계로 나갈 타이밍이죠. 하하.”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