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10대, 30대 대기업 중에서 단돈 100만원도 후원한 곳이 없다. 이런 것들이 선수들에게 자괴감을 주지 않았나 싶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밝힌 ‘올림픽 선전의 변’이다. “체육인들이 위기감을 가진 덕분”이라며 메달 32개를 따낸 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의 선전 이유를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대표팀)가 국가 브랜드 밸류업을 앞장서서 하는데 자괴감이 들었다. (후원이 없는 상황 등) 이런 것들이 (선수단이) 뭉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비롯해 32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대 최소인원으로 출전했고, 금메달 5개가 목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 배 가까이 초과 달성한 셈이다. 체육계 수장은 세계가 주목한 성과가 ‘체육인들의 각성’ 덕분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우리나라가 따낸 올림픽 금메달 13개 중 양궁이 5개, 사격이 3개, 펜싱이 2개다. ‘국기’인 태권도에서 두 개의 금메달이 나왔으니, 배드민턴 세계랭킹 1위 안세영(22·삼성생명)을 제외하고는 ‘활·칼·총·격기’에서 92.3%의 금빛 메달이 쏟아졌다. 옆나라 일본이 8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점을 떠올리면, 좋은 말로 ‘선택과 집중’이 잘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개인기량이 빼어나 중학교 때부터 ‘넘사벽’으로 불린 안세영(배드민턴)과 ‘종주국’ 자부심을 가슴에 품은 태권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효자종목이 제 일을 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때문에 ‘규모의 스포츠’라는 얘기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둘러싼다.

이럴 수밖에 없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 이후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를 고사 위기에 처했다. 정부주도로 생활체육과 엘리트 스포츠를 통합했고, ‘예결산 자유권’을 빌미로 시도체육회의 재정독립을 법으로 규정했다.

시도체육회장이라는 자리는 ‘돈’이 없으면 명예직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므로, 협회장을 잘못 앉힌 종목은 이른바 ‘손가락 빨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됐다.

때문에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향해 “돈의 가치를 증명한 선수들”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사격(한화) 김예지(32·임실군청)를 비롯해 ‘신궁’(현대자동차) 임시현(21·한국체대), ‘명사수’ 오예진, ‘고교생 챔피언’ 반효진 등도 이른바 ‘회장사’의 아낌없는 지원 속 첨단 장비를 활용해 대비훈련한 게 큰 도움이 됐다.

SK텔레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펜싱 대표팀이나 ‘드림팀’으로 근대5종 대표팀을 지원한 LH, ‘세계인의 삐약이’를 탄생시킨 대한항공의 탁구사랑 등도 ‘규모의 메달’을 증명한 투자 사례다.

대기업 지원은 국제대회 성적으로 이어진다. ‘경제 올림픽’ ‘투자의 메달’로 올림픽을 평가하는 이유다. 더이상 ‘헝그리 정신’은 없다. 투자한 만큼 결과를 낸다는 건 ‘경제논리’로 스포츠를 바라봐야 한다. 파리올림픽이 남긴, 이른바 ‘숨겨진 올림픽 레거시’다. 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