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성애자 재희(김고은 분)와 동성애자 흥수(노상현 분)가 함께한 13년을 담았다. 20대부터 30대까지, 모두가 한 번쯤 겪어왔던 시기를 다룬다. 동시에 동성애를 풀어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장하는 관계를 바라본다. 영화의 색다른 재미는 여기서 시작된다.
◇ 흥수와 재희의 연애,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며 성장한다
20대는 서툴다. 연애에 능숙하지 않다. 재희는 대학 시절, 안 해보고 후회할까 봐 착한 남자에서부터 나쁜 남자까지 두루 사귄다. 연애에선 흥수보다 경험이 많다고 자신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후회 속에 함께 술잔을 적신다. 30대가 되고 직장에 취업해 봐도 연애는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변호사인 남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도 당한다. 게이 친구 흥수와 동거를 이해할 남자를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흥수는 연애가 도파민의 농간이라 생각한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이유가 된다. 좋아하는 연인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주저하고 망설인다. 표현에 익숙한 재희를 통해 성장하고 ‘사랑법’을 알게 된다. 재희는 적당한 타협으로 포기했던 소설가의 꿈도 다시 꾼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미덕은 서툴게 ‘퀴어’를 강요하지 않는 것에 있다. 성소수자라는 소재가 눈길을 끌지만, 차별과 혐오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담담하게 보여준다. 퀴어를 ‘병’으로 대하는 흥수 엄마의 감정은 한국 사회가 가진 보편적 정서를 대변한다. 교회를 다니며 아들을 교화하려고 한다. 흥수가 아우팅한 뒤 혼란을 겪은 엄마는 혼자 퀴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을 관람하러 간다. 아들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국 사회 보편적 정서가 어떻게 설득되고 이동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 ‘사이다’ 유머와 ‘Y2K’ 향수 유기적 조합 돋보여
영화는 유머와 향수를 적절히 버무렸다. 툭툭 내뱉는 대사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밤길 여자 혼자 위험해요”라는 말에 “대리님이나 빨리 들어가세요. 남자들이 일찍 일찍 집에 가면 여자 혼자 밤길에도 안전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하는 재희 대사에선 웃음이 터지면서도 속이 시원해진다.
노상현은 “이 장면에서 캐나다 토론토 영화제 1200명 관객 박수가 크게 터졌다”고 전했다. 국경을 가리지 않는 유머가 통했단 얘기다.
‘Y2K’ 패션은 시대를 환기한다. 본더치 모자에서부터 재희 패션은 영화 중반까지 2010년대 감성과 재희 개성을 드러내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화려한 레드 가죽 스커트까지 멋들어지게 소화한다. 30대를 넘어가면서 차분한 무채색 톤으로 바꾼다. 자신을 사회에 적응시키려 하는 모습에서 규격화된 형태로 맞춰가는 30대 직장인 모습을 대변한다.
◇ ‘천만 배우’ 김고은 ‘파친코’ 노상현이 선택한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다. 영화 ‘파묘’로 ‘천만 배우’ 대열에 오른 김고은과 ‘파친코’로 전 세계적 호응을 받은 노상현이 캐스팅됐다.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와 이언희 감독의 연출, 두 배우 앙상블이 합을 이뤘다.
김고은이 2년을 기다려 완성한 영화다. 이유가 충분하다. 본 적 없는 재미와 의미가 담겼다. 컨버스 신고 스크린을 휘저은 무당과 다른 매력이 2시간 동안 이어진다. 또 한 번 김고은의 시간이 다가올 전망이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