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인생은 유한하다. 이 거대한 명제를 거스를 순 없다. 다만 삶을 마감하는 방법이 문제다. 젊을 땐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려 한다. 생을 마감하는 시기가 되면 그제야 생각한다. 누군가는 우아한 마지막을 꿈꾸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런 환상과 달리 요양병원에서 영양식을 주는 콧줄을 낀 채 눈 감을 날을 맞이하는 게 오늘날 한국의 풍경이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안락사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터를 누벼온 종군 기자였던 마사(틸타 스윈튼 분)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앙상하게 드러난 얼굴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항암이 계속된다. 전쟁보다 더한 무게로 짓누르는 고통에 울부짖는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작가 잉그리드(줄리앤 무어 분)는 인생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려고 한다.
두 사람은 안락사와 조력살인이라는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때문에 계획을 세밀하게 꾸린다. 스웨덴에선 안락사가 합법이지만 타국에서 할 여유는 없으므로 미국 내에서 일을 치르기로 마음먹는다. 가급적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동행한 잉그리드가 피의자가 되지 않을 방법을 찾는다.
마사는 은밀하게 약을 구해 디데이(D-day)를 정한다. 둘은 함께 새소리가 들리는 별장으로 향한다. 거사를 치르는 날, 레드 립스틱을 칠하고 붉게 튼 얼굴에 화장하며 세상 제일 예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선다. 마치 한국에서 관 속 염을 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온한 일상을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 그림 속 인물들이 마지막 날을 위로하는 듯하다.
야외 테라스 선베드에 고요하게 눕는다.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진다. 그토록 괴롭혔던 약물에서 해방해 줄 마지막 약을 들이켠다. 그렇게 마사가 떠나고 사건은 시작된다. 경찰 조사가 시작된다. 소환된 잉그리드는 차분하게 준비된 원고를 머릿속에서 하나씩 읊는다. 경찰은 의심한다. 약을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계획이 틀어지자, 변호사를 부르겠다며 자리를 떠난다.
영화는 모두가 겪게 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지만, 모두가 겪지 않는 안락사를 다룬다. 기독교적 시각에선 안락사는 금기시한다. 찬반 논란이 뜨거운 이유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암, 뇌출혈 등 각종 노년층 질병이 찾아왔을 때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하기 힘들다.
대학병원에서 수술, 병간호, 이후 요양병원으로 이어지는 숱한 나날을 겪게 되면 그제야 안락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말하고 듣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눈만 끔벅이는 부모를 보는 자식의 고통은 형용하기 어렵다. 간병으로 피폐해진 육체는 정신마저 갉아먹는다. 인생의 마무리를 선택하는 건 마지막 존엄이라고 생각한다.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KBS ‘거리의 만찬’(2019)에 출연했을 당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애틋함도 있었겠지만, 이 과정이 서글퍼서였다. 당시 힘주어 말한 것은 삶을 마칠 권리를 개인이 가져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 수십 개의 침대에 누워 끝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은 어떤 호러 영화보다 잔혹했고 공포였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주제가 영화 속에 확실하게 드러나지만, 침울한 분위기 대신 빛과 생명력이 충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우리 생이 끝나는 순간이 꼭 찬란하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자연과 함께 인생에 작별의 키스를 보내는 게 생의 본질에 가깝지 않을까.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다. socool@sportsseoul.com